목록보기
제 목 : 역사기행문 ㅡ,,ㅡ |
조회수 : 1589 |
작성자 : 도예진 |
작성일 : 2005-01-22 |
역사기행을 가기 전에 여름에 갔던것 처럼 쉽고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단지 내 착각일 뿐이었다!!. 그때는 내가 6시에 일어난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했다. 차안에서 졸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도 없어었다. 나는 이곳에 갔다와서 집이라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도록 느꼈다. 그날 일기쓰는동안 나는 온몸이 쑤셔서 몸을 비틀며 일기를 썼다. 정말 다음날이 걱정 되었다. 이유는 또 6시에 기상, 밥을 먹고 바로 마니산으로 가야했기 때문이다. 마니산은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산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 같았다. 그날 가슴이 떨려서 잠도 제대로 못잤는데.. 마니산을 올라가는데 왠지 힘이 없었다. 다시 첫째날 아침으로 돌아가서 첫번째로 우리 일행은 행주산성으로 갔다. 서서 목사님 말씀을 들을 때 발이 정말 시렵고 아팠다. 그런데 맨 위에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니 목사님 말씀대로 안 아파 졌다. 두번째로 덕포진으로 출발했다. 그곳에서 대포를 많이 보았다. (그 다음 다른 곳에서도 대포는 많이 보지만...;:) 그 곳은 정말 멋있었다. 여행하면서 바다도 많이 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전쟁을 한 곳 같지는 않았다. 덕포진이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여행을 하면 전쟁을 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중에 다른 나라들은 모두 나쁜데, 여행을 끝내고는 오히려 우리나라의 문제점과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더 생각하게 되었고,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도 더욱 깊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내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더욱 커졌다. 커서 꼭 나라를 사랑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다음으로 덕진돈대, 광성돈대, 용두돈대 등 돈대들을 갔다. 돈대란 해안을 지키는 초소(적으로 부터 지키는 곳)이다. 돈대에는 얇은 길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길을 지날 때 마다 떨어질까봐 무서웠다. 난 이런 내가 부끄러워 졌다. 이유는 목사님이 나처럼 구경하려고도 아니고,사진 한장을 찍어 주시려고 낭떠러지 난간 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셨기 때문이다. 난 그 순간 한 가지 일이라도 최선을 다 해야 겠다는 교훈이 하나 생겼다. 그때 목사님께 정말 정말 감사했다.
박물관도 들리고서, 경계비를 보러 갔다. 우리는 경계비도 직접 보고, 만져보기도 하고 왔다. 나는 첫날에 옛날 학교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가족과 함께 다시 와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다. 내일과 내일 모래 동안(이틀동안) 더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보람있는 일이기 때문에 내가 참을 수 있었다고 생각 된다. 둘째날 모닝콜을 듣고 깨어났다. 역시 일어났다 잠들었다 했다. 오늘도 정신없이나가서 지각을 했다. 이번에도 첫째날과 같은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그리고, 마니산에는 정말로 계단이 정말 918개나 있었다. 생각으로는 몇 걸음 걸으면 백 계단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올라 갔다오니 정말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하고 신기했다. 높은 곳에 가서 그런지 많이 올라가니까 눈이 조금 왔다. 마니산 꼭대기에서 해뜨는 것도 보고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보았다. 카메라만 있었다면.. 아까웠다. 그 곳에 간 이유는 참성단을 보기 위해서였다. 참성단을 처음 보았다. 신기했다. 그리고, 오층석탑, 강화고인돌을 들려서 힘들게 숙소로 돌아왔다. 셋째날 이번에도 6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그리고 대명포구로 갔는데 그곳이 조선시대때에 가장 큰 포구였다고 한다. 이 포구의 덕으로 사람들이 싱싱한 생선들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차에서 해뜨는 것을 또 보았다. 언제보아도 신기햇다. 나는 바로 코앞에서 북한땅도 보았다. 그 곳에는 독수리들이 정말 많았다. 독수리 오형제가 생각났다. 그리고 반구정에 가는 동안에 목사님께서 운전을 재미있게 해주셔셔 지겹지 않았다. 아이들이 멀미도 않하였다. 나는 다음 여름에도 역사기행을 또가고 싶다. 그리고, 여행이 더욱 즐거웠던 이유는 목사님과 집사님이 재미있게 해주시고, 아는 친구,동생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목사님께 정말 감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