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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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추운 역사기행 조회수 : 1793
  작성자 : 원예진 작성일 : 2005-01-26
오늘은 역사기행날,, 정말 기대가 된다..
아침 7:00에시에 1차 역사기행을 가는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우리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행주산성을 향했다.
그 곳은 임진왜란때 적을 막기위해 쌓았다고 한다. <관련된 것:행주대첩,한산대첩,노량대첩이다> 임진왜란때 우리나라는 무기가 부족해서 덫 치마에 돌을 날라서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요즘에 엄마들이 음식할 때 사용하는 앞치마의 이름이 행주치마인데, 이 행주치마라는 이름의 유래는 행주대첩 때 돌을 날라 사용하던 앞치마에서 생겼다고 한다.지역의 이름을 따서..
권율장군은 임진홰란때 싸우다 전사했다. 권율장군은 나라를 구한 일로 훌륭한 사람으로 불리어 진다. 나라를 구하신 의로운 분 이었던 것처럼 나도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는 <<행주산성의 정상>>자유로를 향해 올라갔다. 한강은 고구려의 땅,백제땅,신라의 땅이 번갈아 가며 붙였다 떼어졌다 한다. 한강이 강화도로 흘러간 물이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군을 막았다.일본군은 부산에서 점...점 올라 쳐들어 왔다. 권율장군은 행주대첩에 크게 이름을 날리신 분이다.

다음으로 덕포진 포대이다. (사적 제 292호) 덕포진 건너편은 강화도 <섬>이다. 덕포진 포대는 작전을 짤 때 좋은 곳!

나는 이곳에 대포같은 것이나 여러가지 토굴 같은 것이 있어서 정말 신기했다.

그다음으로 손돌의 묘에 갔다.손돌은 고려시대의 뱃사공. 고려시대 고종이 피난을 갈깨 강화도로 가야하는데 삐둘게 가자, 고종이 죽이려고 해서 손돌이 바가지를 던지며 왕의 배는 바자지를 따라가라!라고 외치자 고종은 손돌을 죽이고 바가지를 따라가자 무사히 태풍을 피해 강화도 까지 갈 수 있었다. 손돌의 묘 앞에는 (소금영+강화)를 써서 짠 맛이 나는 강이있다. 손돌의 이야기는 정말 슬펏다 우리는 가장 감사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만을 따라 갈 것이다.

다음에는 덕포진 교육박물관으로 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공부하던 곳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역사의 손때가 뭇으면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리고 지금 흔한것이 나중엔 흔하지않게 된다. 나도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은 대명항구로 향했다. 포탄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길이는? 215cm 중량은? 180kg.
그다음은 덕진진이다. 그곳은 신미양요때 큰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다음으로 대웅전을 갔다.. 절의 중심건물이다.. 1.기둥에 군인들이 엄마보고 싶다고 쓴 낙서. 어천도사 종이 없어져 인천에 부두가 있는 중국종을 가져온 것이다. 나는 스님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관리를 해야 겠다.

역사기행 둘째날.
아침 5:55분에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마니산을 향해갔다. 마니산의 높이는 469m이고, 계단은 918개 이다. 나는 반도 않되 힘들어서 천천이 걸어 올라갔다. 드디어 마니산의 정상에 올았다. 참 보람있는 등산이었다.

우리는 이규보 선생의 묘를 향했다. 선생은 고려시대때의 문인 이었다. 그리고 팔만 대장경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부탁 할 만큼 글을 잘쓰고, 중국의 이교문서를 주고 받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나도 이규보 선생님처럼 역사가 기억하는 사람이 꼭 될것이다.

다음으로 선원사지에 갔다. 이곳은 선원사라는 절이 불탄 곳이며, 송광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초조대장경, 두번째는 재조대장경이며 마지막으로 팔만대장경이 만들어 졌다.

그 다음으로 갑곶돈대로 갔다. 강화도 역사 박물관이다. 아픔과 실현의 역사. 우리민족의 아픔과, 시련을 고스란히 남겨둔 섬은 강화도! 나는 우리민족에게 아픔과 시련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다음은 강화산성을 향했다. 북문이 허물어져 있었다. 염하를 지나면 북한 개성땅이 나온다.

다음으로 고려궁터이다. 39년 동안 긴 향해를 했다. 몽고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었다. 또 몽고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를 죽였다. 그러자 여자들은 일찍결혼을 했다. <13~14> 조선시대까지 20을 넘지않고 결혼을 해서 "꼬마신랑!"고려의 굼은 불을 태웠다. 왕실이 병자호란때 피난을 와 행궁을 지음.

그다음은 군천이다. 강화를 다스리는 사람이 있던 곳<사또> 관아를 다스렸다.

우리는 강화동종을 향했다. 강화부에서 근무하던 곳. 이방과 이방을 돕기 위해 사람을이 일을 하던 곳.<이방,호방,예방,병방,형방,공방,> 이방을 돕기위해 일한사람이 참 고맙다.

다음은 연무당 옛터로 갔다. 강화도에서 속한 군인들이 훈련. 1876년에 강화도 수호조약 3개의 항구 개방. 무슨일을 하던 일본에게 36년 동안 나라를 빼았겼다. 문양오호 <물>안동김씨가 세종경치를 하고 있었는데 왕은 되었지만,아무것도 할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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