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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도훈이의 기행문 |
조회수 : 1678 |
작성자 : 이도훈 |
작성일 : 2005-01-28 |
틀린 것도 있지만 봐주세요.
1. 첫째 날
행주산성에서 나는 이모들과 해어졌다. 행주산성은 신라 때 만든 것으로 측정이 되고,
산성,읍성,도성중에 산성이다. 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화도에는 묘가 하나 있는데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무덤은 선돌의 무덤이다. 여기에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 이것을
선돌의 바람이라고 한다. 이 곳에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곳이 있는데 배가 다니기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이 곳에서 병인양요가 있었다. 초지진은 고인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싸울 때 중요한 곳이었다. 그 다음에 간 곳은 광성보라는 곳이다. 이 곳에는
쌍충비각이 있다. 이재연과 이재순을 받들기 위해 세운 곳이다. 그리고, 7곱개의
무덤이 있다. 실제로는 51명이 같이 묻혀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용용돈대라는 곳이다. 머리가 용머리처럼
생겨서 용용돈대라고 지었다. 그 다음은 선원사지이다. 지금은 터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절이 있던 곳인데 불태워 없어졌다. 여기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이규보의 묘이다. 이규보는 팔만대장경의 글자가 아닌 글자의 뜻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 다음 숙소에 들어 가서 잤다.
2. 둘째 날
우리는 아주 높은 산 마니산에 올라갔다. 분오리 돈대를 보았다. 강화도 동쪽에 있는 돈대는
전투가 치열했다. 그 다음은 강화 오상리 고인돌군이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중에
고인돌 5개 중에 한 개가 있는 곳이다. 고인돌의 종류에는 북방식고인돌, 남방식고인돌,
개석식고인돌이 있다. 그 다음 본 것은 강화 하점면 오층석탑이다. 유일하게 고려 유물중
강화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근처에 봉은사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나 절 지을 장소가
적절하지가 않았다. 그 다음은 강화산성. 우리나라 수도를 강화도로 옮긴 뒤 고려 중기에
궁을 지었다. 그 다음은 연무당 옛터 이다. 이곳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곳이다.
그 다음은 강화 산석 수문이다. 강화 고려 중기 송악이 있던 수도를 이곳에 궁궐을 짓고,
이곳에서 39년 동안 있던 곳이다. 그 다음은 외규장각이다. 왕실의 도서관이다. 이런 도서관이
4곳이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이 곳에 불을 지르고 중요한 책들을 가져 갔다.
그 다음은 강화 무수부 이방청이다. 이 곳은 이방청에 근무하던 공무원들이 일을
보던 곳이다. 그 다음은 성공회교다. 한국 최초로 서양식 교회이다. 그 다음은 김상용
순절비다. 김상용을 받들기 위해 지은 것이다. 그 다음은 삼랑성이다. 단군의 3째아들이
하루만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그 다음은 전등사 법종이다. 종이 있었는데 없어져서 중국을
떠돌다가 이상한 종이 있어서 이 종을 이 곳에다가 옮겼다고 한다. 그 다음은 전등사
약사전이다. 정면 3칸에다, 측면2칸이고, 팔각지붕이다. 다시 숙소로 와서 잤다.
3. 셋째 날
임진각에 갔다. 이 임진각에서 자유의 다리를 보았다. 이 곳은 육이오가 끝나고 포로들을
교환하던 곳 이라고 한다. 그 다음은 독개다리. 이 철도를 지나면 북한이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다 . 옛날에 쓰던 기관차,비행기,탱크,전차를 보았다. 그 다음은 단구정이다.
황희 정승과 관련이 있다. 고려 시대 말기에 아주 똑똑한 사람이었다. 황희 정승이
머물렀던 곳이다. 그 다음은 화석정이다. 이 마을 이름이 율곡이다. 이 화석정은 율곡의
5대 할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한다. 임진강은 U자로 흐른다.
느낀점-
친구들과 사귈수도 있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활동하고, 자유행동을 할수 있었고, 우리가 몰랐던 역사물과 유물을 볼수 있었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다음 역사 기행때도 다시 한번 더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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