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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강화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이 혜린**)1차 조회수 : 1762
  작성자 : 이혜린 작성일 : 2005-01-31

첬째날

새벽 6시 너무 기대 된 나머지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일어나서 밖을 보니 옷을 단단이 입고 안가면 추울것같이 유리 창이 뿌였다.
후다닥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7시)교회에 도착하니 엄마와 헤어질것을 생각에 눈물이 핑돌았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 진정됐다.

엄마의 얼굴을 잘 봐두었다. (혹시라도 보고싶을까봐.) 8시쯤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고 이젠 차를 타러 내려간다. 입김을 호호 불며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으니 뭔가가 집혔다. 쓰레기인가 하며 꺼내자 그것은 4개의 엄마의 사랑을 담은 편지였다. 읽고 나니 이번 역사기행을 잘갔다올 자신이 생겼다. 드디어 출발한다. 나는 목사님이 운전하시는 차다. 우리 아파트가 점점 멀어지고 엄마가 점점 작아진다. 나는 심심한 나머지 초콜렛을 나눠먹었다. 어떡해-- 초콜렛 봉지가 텅비었다. 올 땐 심심해서 어쩌나 하며 행주산성에 도착했다.

여기서 모이기로 한 팀과 합쳤다. 앗 이름 외우기가 있는데, 그 행주산성에 모인 팀이랑 합하니 그팀이름은 도무지 모르겠다. 내가 그럴게 생각하는 도중에 마침 기회가 왔다. 이름을 모르겠는 친구와언니가 내 이름을 물어봤다.(오 주여!~)

이젠 행주산성에 들어갔다.이 산성은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593년 )에 세운 대첩비가 있다고 한다. 행주산성은 산에 쌓은 성이고 읍성은 마을에 쌓은 성이다. 또 도성은 도시에 쌓은성이다.행주대첩은 권율장군이 일본군과 크게 싸워 이김을 말한다. 싸울때 남자들은 앞에서 돌멩이를 던지고 여자들은 치마의 반을 접은 행주치마로 돌멩이를 날랐다.

강화도는 섬이었다가 붙었다가 떨어지며 섬이되는 신비의 섬 또는 자유의 섬이라고 불린다. 우린 듣기만 하면 되지만 목사님은 말씀을 하신다. 목사님이 이번 역사기행이 끝나면 목이 무지 아프실것같다.우리는 덕포진으로 이동했다. 한군데만 갔는데 차에서 내리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일기를 위해 내렸다.그곳에는 서해바다(염하)가 있는데 그것을 한자로 하면 소금 염~ 강물 하~이다. 그곳에서는 여러 돈대(광성돈대,손돌목돈대,용두돈대)를 볼수있고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손돌의 묘로 향했다. 손돌은 고려시대의 뱃사공이었다. 그때 몽골 군대가 쳐들어와서 피난을 강화도로 가야했다. 그날을 소용돌이가 일어나 조심해야했다. 왕을 태운 손돌이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가서 왕이 손돌을 죽이려했다. 손돌은 바가지를 놓고 따라가라고 했다. 왕은 그렇게 하자 무사히 도착했다. 왕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고 손돌의 묘를 세웠다.

그 다음으로 교육박물관에 갔다. 그 박물관에서 소중한 말을 들었다. 아무리 흔했던 것이라도 역사의 손때가 묻으면 귀하게 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다. 다음은 초지진에 갈 차례다.

이 곳은 해상으로 부터 왜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조선 호종 7년에 구축하는 요새이다. 강화도는 역사가 많다. 또 우리 나라는 무기가 많지 않다. 일본보다 발전이 늦기 때문이다.

다음은 덕진진에 갔다. 염하 건너편에는 덕포진포를 쏴서 했는데 이길수 가 없었다.(불리해) 신미양요때 무서운 일을 격었다. 불 태웠다. 불타서 죽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남장포대를 거쳐 덕진돈대에 갔다.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중 하나이다. 덕진돈대는 군인들이 적을 무찌를때 사용하던 곳이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무서운 전쟁이 있어서 경험했다. 덕지돈대를 허물어 버렸다. 지금우리가 본것은 새로 새운것이다.

그 다음으로 광성돈대에 갔다. 초지진과 덕진진이 무너졌다. 여기에 이천사람 어재연 ,어재순 장군이 미군과 전쟁을 했다. 그런데 그만........전사하셨다. ( ~~흑) 다음은 정족산성에 갔다. 강화도를 지키던 양헌수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에게 프랑스 군대는 전멸당했다. 화가 난 프랑스 군은 집을 불태우고, 왕립도서관(사고)에 있는 중요한 책을 가져갔다. 그책을 꼭 가지고 와야한다.(현재 프랑스의 어느 도서관에 보관돼있음..)

정등사에 갔다. 절에는 중심건물이 있는데 그것은 대웅전이다.대웅전을 지을때 나무로 짓는다. 나무로 짓는 사람은 목수이다.대웅전을 지을 때에 술집아가씨에게 반해 돈을 주었다. 그러자 아가씨는 돈만가지고 달아났다. 화가난 목수는 절 지붕이나 받쳐들어라 하고 절지붕 밑에 발가벗고있는 모습을 새겼다.

우리는 뉴~그린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호텔에는 침대도 있고 텔레비전, 화장실도 있다. 우리는 가방을 벗고 발 씻고 양치질을 하고나니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편지를 보았다.다음에 쾌걸춘향을보고 잤다. 내가 일등으로 잤다.


둘째날

새벽6시50분에 어났다. 우린 옷갈아 입고 7시30분 까지 마당으로 나왔다. 나만 잠이 덜 깬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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