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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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강화도 역사기행(선사시대부터 분단까지) 조회수 : 1759
  작성자 : 박용재 작성일 : 2005-02-09
파일과 포인트 선물 아빠통해 받았습니다.
이거 갔다 드리느라고 목사님 감자탕 사드셨겠네요.헤헤
일단 역사기행문 파일첨부합니다.


첫째날

5시에 일어나서 이천으로가 역사기행을 시작하였다. 첫날은 목사님 생신이라 하셨는데 백한울 형이 일일이 찾으며 다 전화했다는데, 나는 그때 집에 없었는지 어떤지 전화를 받지 못하였다. 아무튼 그래서 그날이 생신인줄 그제야 알았다.

먼저 행주산성으로 갔다. 그곳에서 몇몇 일행을 만나고 행주산성을 올라갔다. 먼저 행주산성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옛날 임진왜란당시 이순신의 해군이 보급선을 끊자 퇴각하는 우끼다의 30.000의 군대가 2.000의 군사밖에 없는 행주산성을 치고 들어왔다. 그 당시 장수이던 권율은 벼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55세 때 문과로 벼슬을 했고 광주목사 때 무신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또한 이항복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한다. 그때 남자들은 그때가 추수하고 난 직후였으므로 짚에 불을 붙여서 적군에게 던지고 활을 쏘아 저항했으나 그것이 다 떨어지자 싸울 무기가 없을 때 여자들이 덧치마를 입고 돌을 날라 싸워 결국은 승리해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을 이루어 냈다. 행주산성의 정상에는 그의 부하들이 세운 대첩비가 있는데 이것은 진정한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이지 국가가 세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고 한다.

다음은 김포로 가서 덕포진에 갔다. 덕포진 포대의 앞은 염하(鹽河)다. 즉 강이 아닌 바다다. 그곳에서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터지는 식인 “포탄”이 아닌 그냥 가서 때리는 식인 “탄”이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격침된 배는 1척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간곳은 손돌의 묘. 이 손돌은 뱃사공 이였는데 고종때 피난 가던 고종이 용두돈대로 가려 했을 때 소용돌이가 쳐서 피해가는줄 모르고 몽골군에게 팔아넘기려는 줄 알고 칼로 벨 때 손돌이 바가지를 따라가라고 바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 벌써 칼로 베였고 결국 갈 방법을 찾지 못하고 손돌이 알려준 방법대로 가자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설화가 있다.

다음은 교육박물관. 여기에서는 목사님이 어렸을 적 즈음에 물건을 모아놓은 것 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옛날식 수업도 받았다. 게다가 옛날 사용했던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초지진에 갔는데 우리나라가 39년간 대몽항쟁을 한 곳이며 일본사람이 이곳에 물 마시러 왔다가 시비를 걸어서 전쟁을 일으킨 곳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 덕진진에 갔다. 그 곳은 신미양요 때 이곳에서 싸웠다고 한다. 그때 이곳을 아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가버렸다. 그리고 이때 불에 타서 죽은 사람들도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옆의 덕진돈대란 곳에 갔는데 그 곳은 외적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그 안에서 2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들어가 적을 물리치던 곳이었다. 신미양요 때 무저니 것을 다시 수리하여 제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에는 경고비 까지 써있다. 그 뜻은 “다른 나라의 배는 이곳을 지나가지 마시오.” 라고 써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힘이 없으면 소리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광성보에 갔다.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초지진과 덕진진이 무너지고 어제연 과 어제순이 이 곳에서 미국인들과 싸우다 끝내 전사를 하고 조선군이 전멸하였다. 그 다음에 용두돈대에 갔다.
그곳은 용머리같이 생겼다해서 용두돈대라고 한다. 그 앞에는 소용돌이가 있어 40년 동안 몽고군들이 못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은 적의 중요한 교통의 요지임과 동시에 침입로이다. 그곳에는 어제연 형제의 비각이 있었다. 그분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 다음 갑곳돈대의 역사관에 갔다. 이 곳 아래에서는 탱자나무를 볼 수 있다. 탱자나무들은 원래 많았는데 지금은 한 그루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 탱자나무는 400살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왕자와 일가를 데리고 있었는데 수비대장이 못 들어올 것 이라 생각하고 술만 퍼마시다가 결국은 잡혀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다.

다음으로 선원사지란 곳에 갔다. 선원사지는 선원사가 있던 터이다.
지금은 불 타 없어 졌지만 터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어 주춧돌 까지도 남아있다. 고려조정은 초조대장경이 만들었지만 몽골의 1차 침입 때 불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이곳에서 제조대장경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 다음으로 이 규보 선생님의 묘에 갔다. 이 규보 선생님은 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셨다. 강화도에서는 입금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다 한다.


둘째 날

오늘은 먼저 마니산에 갔다. 그런데 마니산은 내 생각보다 아주 큰 산이었다. 정상이 해발469m라고는 하지만 더 힘든 것 같았다. 그리고 계단도 918개씩이나 되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참성단이라는 단군이 하늘에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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