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옷과 포도주 비유 말씀 |
조회수 : 1829 |
작성자 : 호롱불 |
작성일 : 2005-07-15 |
마태복음 9장
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윗글의 설명입니다.
마태,마가,누가 복음에서
모두 단식과 옷,포도주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 분들이 단식을 하지 않다가 주님을 잃고는
단식을 하게 된다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옷과 포도주 비유로 말씀을 이으셨습니다.
주님이 돌아가시기 이전의 제자들은 단식을 안하시고,낡은 옷이고,묵은포도주이고,헌 부대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시고,새 옷이고,새포도주이고,새 부대입니다.
주님이 돌아가신 이후의
제자 분들의 변화는 단식하지 않다가 단식 하시게 된 것이고
그리고 옷과 포도주의 비유로 제자들이 겪을 영적인 변화에 대해서 비유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성령을 한 번 내리시면 어느 정도나 내려주시는지
알려 주시려고 옷과 포도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서 성령 충만도 되는 줄 압니다.
성령충만 되더라도 지속적이지 못해서 다시 조금씩 조금씩 성령을 얻는다 생각하겠지만
아래의 마태복음 16절에서는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사람이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
위에서 사람은 하나님 입니다.
하나님은 낡은 옷에다가 성령의 생베 조각을 붙이시지 않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낡은옷을 입은 제자들에게 = 아직 옛사람의 옷을 입은 제자들에게
= 죄의법 에서(바울이 전하심) 해방되지 못한 제자들에게
성령을 조각으로 내리시는 일은 없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성령의 새 옷을 처음 내리실 때에
그 성령의 분량을 사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 될 수 있을 만큼 내려주십니다.
성령의 기본 분량이 부족한 성령을 내리시면( = 성령의 작은 옷 조각을 내리시면)
성령의 법이 많이 부족해서 사람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바에 성령을 조각으로는 아예 안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법을 생베 두조각,세조각,네조각,... 이렇게 주시는 일도 없습니다.
죄의법에서(108 번뇌 같은 것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성령의 법은
그 분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성령의 법 조항이 부족해서 죄의법을(108 번뇌 같은 것을)
다 이기지 못하는 성령의 옷을 내리시는 일은 없다는 뜻입니다.
=낡은 옷에다 생베 조각을 붙이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낡은 옷에다 성령의 생베 조각을 붙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의법에서 해방되게 해주시는 성령을 내리실 때
죄의법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는 작은 성령을 내리시는 일은 없습니다.
다음 말씀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면 생베 조각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하나님께서 성령의 법 조항이 부족한 성령을 제자들에게 내리시게 되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해서 성령으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낡은 옷을 입은 육신이 성령으로 죄를 짓게 되므로 중죄가 되어서
성령의 법이 부족한 작은 성령을 내리시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36절
36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위의 말씀은
성령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알리시는 것입니다.
낡은 옷에 새옷 조각을 한 군데나 여러군데 붙이면 보기가 더 안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100% 새옷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새옷에 익숙해지면 예수님과 같이 완전해 집니다.
새옷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약 1~3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성령이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7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낡은 가죽 부대 =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
새 포도주 =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성령의 법 조항이 모두 포함된 성령.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지 않는다 하시는 것은
하나님 마음에 드시지 않는 교인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법이 모두 포함된 성령의 새 포도주를 내리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려지면 성령의 뜻과 맞지 않으므로 성령은 즉시 떠나가고
그 육신은 성령을 얻었어서 단번에 생겨난 큰 믿음과 죄의법 때문에
새믿음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서 중죄인이 됩니다.
성령의 새 옷 한 벌인(성령의 생베옷 한 벌인) 새 포도주는
하느님 마음에 드시는 새 부대 같은 사람에게 내려주시고
죄의법을 모두 이길 수 있도록 성령의 법이 빠짐 없이 모두 포함된 성령을 내려주십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39절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포도주를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묵은 포도주 =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지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지 않은 사람의 영혼.
묵은포도주에 새포도주를 조금 넣으면 역시 묵은 포도주 입니다.
그래서 묵은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100%의 새포도주 보다 본능상 희석된 포도주를 마십니다.
묵은 포도주에 새포도주를 반을 넣으면
묵은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100%의 새포도주 보다 본능상 희석된 포도주를 마십니다.
묵은포도주 1리터에 새포도주 700ml 를 넣으면
묵은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100%의 새포도주 보다 본능상 희석된 포도주를 마십니다.
묵은포도주 1리터에 새포도주 800ml 를 넣으면
묵은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100%의 새포도주 보다 본능상 희석된 포도주를 마십니다.
누구라도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만 찾게된다는 말씀의 가정하에
많은 교인들이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시는데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묵은 것만 찾고 새것을 마시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새포도주을 조금씩 조금씩 계속 넣고 성령의 새 옷 조각을 조금씩 얻는다 하고
묵은 포도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해도 본능적인 판단으로는
여전히 희석된 포도주를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마음의 죄의법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령을 조금씩 조금씩 안내려주시고
희석된 포도주도 안주시고 100%의 새포도주만 내려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육신이 연약하여 죄짓게 된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고
모든 죄의법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는 성령의 지각과 성령의 본능으로(하나님의 성품으로)
묵은 포도주나 희석된 포도주를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하시지 않고
100%의 새포도주가 더 좋다고 하시게 됩니다.
믿음의 판단이 아니라 선악과의 사람 본능과 성령의 본능을 두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로 생겨난 본능과 성령의 본능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사랑의 정의를 지키려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은
인내,성냄,투기,등등 108 번뇌 류가 생겨나게 되는 원인이 되는 죄의법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뜻이고 선악과로 생겨난 이러한 나쁜 본능은
묵은포도주를 더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지만 믿음으로 살게되면
묵은포도주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 할 뿐이고
묵은포도주가 더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살 뿐입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죄짓거나 죄짓고 싶어서 죄짓게 되는 날에는
묵은 포도주를 더 좋다하고 마시게되고 그런 후에 후회하며 회개합니다.
진짜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렇게 후회할 죄를 지으시지 않습니다.
간접적으로나 타인에 의해서 죄된 세상에서 살아가시다가 성령의 사람이 피해를 입고
성령의 본능상 바라시지 않는 묵은포도주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면
성도도 회개하시는 일이 생겨나게도 됩니다.
사람 마음의 죄의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성령의 법이 모두 기록된 성령을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되면 그 즉시
공자와 석가모니 이상의 성품을 지닌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않다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다 하는 사람이 공자와 석가모니 이상의 성품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고도 주님께 모른다 여김받는 사람들 처럼
주님이 여러 방법으로 돌봐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속단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36절
36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