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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촌스러운 폴포츠의 신비로운 오페라입니다. 조회수 : 2253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07-07-17


폴 포츠라는 36세 영국 남자가 인터넷에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휴대전화 판매원이었지요. 한눈에 봐도 ‘세련됨’과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옷차림은 후줄근했고 배가 볼록 나온데다가 치열마저 둘쭉날쭉했지요. 말투도 어눌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Britain’s Got Talent)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추어들의 노래 경연장입니다. 예선부터 결선까지 모두 3회에 걸쳐 실력을 겨루는 영국 ITV의 인기 프로그램이지요. 예선은 14일에 있었습니다. ‘촌스러운’ 폴 포츠가 주눅든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오자 관객과 심사위원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요. 세 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아만다라는 여성 심사위원이 “뭘 할 거예요?”라고 묻습니다. 잔뜩 긴장한 폴 포츠의 입에서 “오페라를 부르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어눌하게 흘러나오지요.

오페라? ‘브리튼스 갓 탤런트’는 주로 팝을 부르는 프로그램입니다. 게다가 후줄근한 외모의 ‘아저씨’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더듬거리며 말하자 심사위원들은 다들 황당하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경연 참가자들에게 독설을 퍼붓기로 유명한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이 가소롭다는 듯이 “어디 한번 해 보세요”라고 한마디 툭 던지지요.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반전(反轉)됩니다. 폴 포츠가 ‘네쑨 도~르마, 네쑨 도~르마’ 하면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의 첫 부분을 노래하자마자 심사위원들은 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독설가 사이먼 코웰은 ‘이럴 수가!’라는 표정으로 폴 포츠를 바라보지요. 객석에서도 ‘난리’가 납니다. 아리아가 클라이맥스로 접어들면서 ‘빈체로, 빈체~로!(승리하리라!)’ 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대지요. 어떤 관객들은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요.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종양과 교통사고로 꿈을 접었다는 휴대전화 판매원 폴 포츠. 늘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그는 준결승에서 안드레아 보체리의 히트곡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부릅니다. 결승에선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다시 부르지요. 1등을 차지한 그는 상금 10만파운드(약 1억8000만원)를 받았고, 영국 여왕이 주최하는 ‘2007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네티즌들은 UCC 동영상을 부지런히 퍼날랐지요. 처음 이 동영상을 봤을 때 혹시 연출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잠깐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하지만 폴 포츠의 간절하고도 긴장된 표정, 특히 1등으로 호명되던 순간에 그의 눈에 맺히던 이슬이 잠시의 의심을 거둬갔지요.

그가 불렀던 ‘네쑨 도르마’는 푸치니의 ‘투란도트’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아리아입니다. 남자 주인공 칼라프가 3막에서 부르는 ‘승리의 아리아’이지요. 직역하자면 ‘누구도 잠들지 못하리’라는 뜻이지만 대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번역합니다. 칼라프는 모험심이 많은 데다 권력을 향한 욕망도 큰 인물이지요. 그는 투란도트 공주가 낸 세 개의 수수께끼에 도전합니다. 세 개를 모두 맞히면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왕국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틀리면 죽음이지요. 칼라프는 3막이 열리자마자 ‘나는 공주를 차지할 것이다. 아침이 되면 승리자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노래합니다.

‘네쑨 도르마’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이기도 하지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로마에서 열렸던 ‘3테너의 콘서트’. 주빈 메타가 지휘했던 이 콘서트의 실황 음반은 불티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지요. 물론 이 무대엔 플라시도 도밍고도 있었고 호세 카레라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바로티가 부른 ‘네쑨 도르마’야말로 압권이었지요.

그는 지난 2월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상업적 성악가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파바로티가 뛰어난 테너라는 사실을 부정하긴 힘들지요. 그는 현재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막 클래식에 눈 떠가는 당신은 오페라 ‘투란도트’ 전곡 음반보다는 파바로티의 앨범으로 ‘네쑨 도르마’를 접하는 게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글은 경향닷컴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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