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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연변과기대 정진호 부총장의 간증 조회수 : 2380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09-11-14


하나님 나라의 계승
정진호(연변과기대교수)


저의 대학 생활을 회고하면 항상 이상의 시 ‘오감도’가 떠오릅니다. 막다른 골목길을 무작정 달려가던 13인의 아이들처럼, 저는 그저 아무 목적과 비전도 없이 달려갔습니다. 일주일에 닷새 가량을 술로 지새우다보니 나중에는 알콜 중독 초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손이 떨려서 커피 잔을 들 수 없었으며, 편두통과 위장병과 불면증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도피의 세계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갈수록 내면의 허무감은 심연처럼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나가는 여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결혼 후, 일요일마다 아내는 반주자로 충실히 교회에 다녔고, 저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안은 채 더러는 한 손에 담배를 삐끔거리며 TV앞에 앉아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주일에는 아내의 교회에 마지못해 나가 인사를 했습니다. 신랑 얼굴을 보기를 원하던 교회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간 것입니다. 이제 곧 떠나니 붙잡힐 염려가 없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때 교회에서 선물로 성경을 주었습니다. 저는 별 쓸모없어 보이는 그 선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민가방을 싸다보니 성경이 들어 있어서 빼 놓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야 할 형편이었기에 성경은 마땅히 자격미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제가 빼놓으면 아내가 그것을 넣고 빼면 또 넣어 결국 성경은 보스턴까지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보스턴 로건 공항에 도착하니, 대학원 시절의 후배 H가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마중을 부탁한 후배는 다른 사람이었기에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더구나 그는 이전의 제 기억으로는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던 후배였습니다. 그는 공부를 잘했지만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이었습니다. 뜻밖이었지만 일단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H는 무거운 우리 짐을 솔선하여 들고 낑낑대며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저녁, 후배 H의 부인이 차려준 맛있는 저녁을 먹고 그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임시 아파트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부터 여러 사람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미국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후배 H부부의 친절한 도움은 제 마음을 조금 흔들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H는 예전의 그가 아닌듯했습니다. ‘그래도 뭐, 외국이니까 서로 돕는 거겠지’하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첫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H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다른 날에 그런 적이 있듯이 또 쇼핑을 하러가든지 혹은 피크닉을 가는 것이겠거니 하며 서둘러 그의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그 차는 그길로 교회로 직행했습니다. 아내가 사정해도 3년 동안이나 가지 않던 교회를 그렇게 끌려간 것입니다. 기분이 조금 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도움 받은 것이 있어서 내색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예배 후 교제 시간에 빵과 커피를 마시는데, 여러 사람들이 와서 서로 인사를 했습니다. MIT와 하버드 다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다들 너무 친절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래, 이런 사람들 사귀어두면 손해 볼 건 없겠지. 그래, 이민 생활이나 유학생활 하려면 교회를 다녀야 도움도 받고, 더러는 김치라도 얻어먹는다더라.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번 다녀 보자.’

항상 술친구들에 둘러싸여 교회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예전과 달리, 막상 한국을 떠나오고 환경도 사람도 낯선 이국에 머물게 된 제 심리상태가 어쩌면 저를 너그럽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저의 교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후배 H가 저에게 금요일마다 하는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무지 제가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지금 교회 나가주는 것만 해도 크게 양보하고 있는데, 무슨 놈의 성경공부?’라고 생각하며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금요일은 주말의 여유와 함께 술 마시는 건수들이 항상 기다리는 날 이기도 했습니다. 이리저리 후배 H를 피해가던 중에 어느 주말 하루는 그가 “오늘 찰스 강변에서 교회 사람들이랑 바비큐 파티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어요?”라고 물어왔습니다. ‘바비큐라고?’ 어느 집에 초대받아 먹어본 LA갈비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함께 가자고 채근하는 그에게 못이기는 체하며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결국 저는 바비큐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상쾌한 강가에서 펼쳐진 정말 멋들어진 바비큐 파티였습니다. 이후 한 사람이 바로 옆의 웨스트 게이트(MIT 기혼자 기숙사)의 자기 집에 가서 차를 마시자고 제안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습니다. 깔끔한 신혼부부 집 장식이 잘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차와 과일을 먹으며 모두들 즐거워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대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찰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야경도 멋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옹기종기 둥그렇게 모여 앉는가 싶더니 모두들 갑자기 성경을 꺼내들었습니다. 순간 저는 당황했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오늘이 금요일이지. 이 모임이 성경공부 모임이구나. 속았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성격상 쉽게 표현도 못하고 그냥 눈치만 보며 어색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도 저를 무척 의식하는 듯 조심스럽게 모임을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창세기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라고?’ 갑자기 흥미가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시절, 저를 전도하기 위해 애를 쓰던 CCC출신 친구가 이렇게 도전한 일이 있었습니다. “설사 기독교를 반대하더라도 성경을 한번 읽어보기나 하고 반대해야 할 것 아니냐? 그래도 성경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인데···안 그래?”오기가 생겨 성경을 정독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제게 조금은 익숙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 나름대로 결론을 다 내린 바도 있습니다. 도덕경이나 인도 철학에 비하면 깊이에 있어서 한참 뒤떨어지는 남의 나라 신화와 역사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흠, 이 친구들이랑 논쟁이나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삐딱하게 앉아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제 생애 첫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온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오랜 시간 기도를 했던 탓인지, 집요한 제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를 위해 한 줄 한 줄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진도를 나가다보니 창세기를 가지고 거의 일 년을 끌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대답을 듣고 있는데,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는 아주 가느다란 생각이 빛줄기처럼 제 가슴을 파고 들어왔습니다. 그 일은 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항상 제가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오던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창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니 저는 성경이 지닌 무게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정말 대단한 책이구나! 결코 만만히 볼 책이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열심이 불붙어 교회생활과 성경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로마서로 이어지는 성경공부를 통해 복음의 내용이 이성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왜 십자가에 달려야만 했는지,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의미가 깨달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에게는 여전히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옛 친구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제가 예수 믿는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마치 잠수함이 바다 속을 빙빙 도는 듯한, 그런 심리상태가 여전히 저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말씀이 비수처럼 제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갑자기 깨달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렇구나.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내 평생을 두고 목 터져라 외쳐야 할 자랑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속의 잠수함이 갑자기 바다 위로 솟구쳐 올라오면서 찬란한 햇빛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저의 죄로 인해 돌아가신 예수의 십자가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 속에 감추어져 있던 모든 교만한 생각들이 파편처럼 눈물과 함께 흘러넘쳤습니다. 아무튼 이후로 아마 6개월 가량을 눈물로 지냈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이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유학 오는 후배들을 공항에서 붙들어 교회로 인도하고 성경공부에 초대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데, 하루는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복음을 내가 왜 진작 깨닫지 못했던가? 만일 예수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그 소중한 청춘의 때를 허랑방탕하게 날려버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하나님께 떼쓰듯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십년만 뒤로 돌려주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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