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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장 도미니끄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 조회수 : 3156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12-03-17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 ELLE>의 편집장이었던 장 도미니크 보비는 저명한 저널리스트였고, 자상한 아버지였다. 멋진 생활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유행의 선도자였으며,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유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1995년 12월 8일, 아들과 연극구경을 하기로 한날, 시운전하던 차(BMW)안에서 갑작스런 뇌종증으로 쓰러졌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20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뿐이었다. Locked-in-syndrome, 즉 의식은 멀쩡한데,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가지 한 군데도 움직일 수없이 감금된 것과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절망스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좀 지난 후 자기의 사랑스런 두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눈을 한번 깜박이면 A, 두 번이면 B, 이런 식으로 왼쪽 눈꺼풀을 깜박거리면, 비서가 그것을 보고 한자씩 적어나갔다. 이렇게 써내려간 글은 하루에 반쪽 분량이었다, 그리고 15개월 동안 끊임없이 눈을 깜박거려 완성한 책이 <잠수복과 나비>이다.

지난 주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마지막 생명력을 쏟아 부어 쓴 이 책은 길지 않은 그의 삶에서 일어났던 일화들을 풍자와 유머로 진솔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잠수복’은 전신이 마비된 그의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고, ‘나비’는 세상 어디든 날아가고픈 그의 정신을 상징하는 말이다.

아래의 내용은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 지금 현재로서는 끊임없이 입 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 아이들의 엄마가 밀어 주는 바퀴 위자에 웅크리고 앉아 병원 복도를 지나면서, 나는 아이들을 은근 슬쩍 관찰한다. 나는 비록 허수아비 같은 아버지가 되어 버렸지만, 부산스럽게 움직여대고 투덜대는 테오필과 세레스트, 이 두 아이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나는 아이들이 걷는 모습만 줄곧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다. 아이들은 내 곁에서 비록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축 처진 아이들의 가녀린 어깨에서 거북한 심정이 배어나온다.

-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 온다. 내 아들 테오필 녀석은 50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머리털 한번 쓸어 줄 수도, 고운 솜털로 뒤덮인 아이의 목덜미를 만져 볼 수도, 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 줄 수도 없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극악무도한? 불공평한? 더러운? 끔찍한? 순간적으로 나는 그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목에서는 그르렁거리는 경련이 터져 나와 테오필을 놀라게 한다.

- 정상인으로 잠을 자고, 눈을 뜨면서도,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르는 채 오히려 툴툴거리며 일어났던 수많은 아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한단 말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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