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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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0대를 인생의 봄에 비유하곤 합니다. 희망과 기대가 큰 세대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한다면 이런 희망과 기대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열려있고 기대가 큰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부담도 큰 법입니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의 삶을 영위해야 하고, 삶의 분명한 목적으로 가지고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배우자를 선택해서 가정을 이루고, 직업을 가짐으로 자기의 발전과 삶의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more

흔히 20대를 인생의 봄에 비유하곤 합니다. 희망과 기대가 큰 세대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한다면 이런 희망과 기대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열려있고 기대가 큰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부담도 큰 법입니다.
이 시기의 젊은이들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기의 삶을 영위해야 하고, 삶의 분명한 목적으로 가지고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 배우자를 선택해서 가정을 이루고, 직업을 가짐으로 자기의 발전과 삶의 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제들을 잘 수행해 나갈 때 청년기는 진실로 인생의 희망의 계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경우도 그렇듯이 청년기의 이러한 요청들에 대한 해답이 그리스도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현대교회는 청년기의 젊은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용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서 담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해 가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사역에 힘쓰고 있습니다.

 

 청년사역의 일곱 가지 비전

▣ 전도 (Evangelism)
▣ 제자도 (Disciple)
▣ 기독교 세계관 (Christian World View)
▣ 기독교문화운동 (Christian Culture)
▣ 세계선교 (World Mission)
▣ 남북통일 (South-North Unification)
▣ 창조질서 회복운동 (The Movement for Creation Order 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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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방황하는 거리 아이들의 어머니 남순애 목사 조회수 : 2320
  작성자 : 정재희 작성일 : 2004-02-21
방황하는 거리 아이들의 어머니 남순애 목사

버림받았던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며 상처 입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쌉니다”도봉산 자락 판자촌에 자리잡은 도봉산교회 남순애 목사는 정에 굶주린 채 거리로 내몰린 아이들에게 11년째 친엄마 못지않은 사랑을 쏟아 부어왔다. 교회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고통 속에서 스무 명에 이르는 식구들과 함께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남순애 목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었다.

부모의 사랑받지 못하고 밖으로 도는 아이들 사랑해주면 아이들은 반드시 달라집니다”도봉산교회를 찾아갔다. 개천이 흐르는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코앞에 산자락이 보인다. 갈래갈래 굽이진 골목길 중 하나를 골라잡았으나 끝에 다다르니 막다른 길이다. 얼마간 헤매다 접어든 골목길에서 산 밑까지 이어진 좁은 길 끝에 비로소 교회 문패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시라는 행정상의 구획이 무색할 만큼 옹색한 마을….

교회에 들어서니 입구 옆 창고에 빨래가 가득 쌓여 있다. 꼬질꼬질 때가 묻은 아이들의 옷가지가 대부분이다. 교회라고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번듯한 의자 하나 없다. 마루 정면 벽에 걸려 있는 대형 십자가를 빼면 그저 평범한 방 두 칸 짜리 가정집이나 매한가지다. 거실 한편에는 어린아이들의 양말과 속옷가지들이 오밀조밀 앙증맞게 걸려 있다. 아휴, 이 빨래를 언제 다 하나…” 엄마들의 일상적인 푸념처럼 한숨을 쉬며 남순애 목사(44)가 주섬주섬 방석을 내온다.

유치원 간 아이들이 저녁이나 돼야 돌아와요. 동네 유치원 원장이 우리집에 애들이 많다고 도와주셔서 식대 정도만 내고 여섯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쳐주시거든요. 태권도장 관장님도 아이들 셋을 돈 안 받고 받아주셨어요. 이 동네 아이들한테 학원이나 과외는 너무 큰 사치거든요. 고마운 분들이지요.”교회 겸 집인 도봉산교회에는 현재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20명 남짓의 아이들이 머물고 있다. 친딸인 지혜(15)와 은혜(14) 외에도 수십 명의 아들, 딸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칭도 셋째 딸, 넷째 딸, 막둥이 하는 식으로 친자식이나 다름없다. 오갈 데 없이 외로운 독거 노인들까지 머무르는 날이면 그야말로 대식구가 된다.

근근이 살아가는 주민들이 대부분인 이 동네에는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그중에는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담배를 배운 아이도 있고, 본드를 흡입하며 잘못된 길로 접어든 아이, 걸핏하면 주먹질을 하거나 좀도둑질을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자폐 증세를 보이며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내는 아이들도 몇 있었다. 남순애 목사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새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이 집 저 집 전전하던 서러움이 큰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없는 형편에도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아이들을 하나둘 거둬 먹이며 집으로 불러 들였다. 돌봐주는 이 없는 어린아이를 데려다 봐주고, 나쁜 짓 하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먹이고 재워주며 올바른 길로 끌어주려 애썼다. 그렇게 지난 세월이 벌써 11년. 남 목사의 집을 거쳐간 아이들만 3백 명이 넘는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 온 게 1992년이에요. 네 식구가 단칸방을 얻어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많이 봤어요. 우리도 넉넉잖은 형편이었지만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노인이나 젊은 사람들이나 툭하면 싸우기 일쑤고, 아이들은 밖으로 돌며 엇나갔어요. 그 아이들을 데려다 먹이고 보듬어주니 어린아이들은 저를 진짜 엄마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사랑 못 받아서 상처받은 아이들은 사랑으로 대해줘야 나을 수 있어요. 정말 그렇게 해주고 싶었어요.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최대한 해주고, 갖고 싶은 게 있다면 형편 닿는 대로 사주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려고 애썼죠.”어른, 아이 없이 모여들여 동네 사랑방이 된 교회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 보는 게 보람이죠”그렇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남 목사네 단칸방은 이내 사람들로 북적댔다. 낮에는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됐고, 저녁에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돈이 없어 길바닥에 나앉게 된 가족들이 와서 자고 갔고, 남편에게 매 맞고 쫓겨온 엄마들이 몸을 숨기기도 했다. 좁은 방에서 하도 여럿이 자니까, 한번은 머릿수를 아무리 헤어려봐도 어린애 하나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작은 아이가 큰 아이들 밑에 깔려서 자고 있더란다.

늘 사람들로 북적대다 보니 집주인이 좋아할 리 없었다. 당장 방을 빼야 하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같이 지내던 환자들과 애들을 버리고 식구들끼리만 떠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있는 돈을 다 긁고 은행 대출을 받아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 이사 왔을 때 난방 시설이 고장 나 3년을 불을 못 땠다. 구청 직원 중 하나가 우연히 집에 들렀다가 딱한 사정을 보고 사비로 보일러를 달아주었다.

신앙을 기반으로 아이들을 이끌기 위해 96년 신학교에 들어간 뒤, 2001년 목사 안수를 받고 도봉산교회 문패를 걸었다. 갈수록 식구들은 늘었고 교회는 점점 비뚤어진 아이들의 안식처가 되어갔지만, 담벼락이 하루가 다르게 내려앉아서 매우 위험했다. 생각다 못한 남 목사는 호소문을 써서 청와대로 보냈고, 그것이 구청에 전해져 구청 건축 담당자가 교회로 시찰을 나왔다. 어떻게든 건축허가를 내달라고 사정을 했고, 구청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은행 융자를 얻어 2003년 봄, 지금의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누가 그거 하랬느냐, 자기 식구나 잘 챙기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어요. 동네 사람들 시선도 곱지 않았죠. 괜히 와서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특히 작년에 집 지을 때 생각지도 못한 이웃 하나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괴롭혀서 맘 고생이 심했어요. 우리는 남을 도와주고, 아껴주고, 사랑을 베풀었는데 왜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 허탈한 마음이 들더군요.”처음에는 집에 머무는 아이들이 남목사의 목걸이, 반지, 심지어 손님들 소지품까지 훔쳐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남 목사의 훈계를 뿌리치고 뛰쳐나갔다가 배가 고프면 들어오곤 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남목사는 혼낼 때는 따끔하게 혼을 내면서도 그 아이들이 먼저 맘을 열 수 있도록 끝없이 대화하며 상처를 어루만졌다. 여느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든 보내주고 싶었고, 피자가 먹고 싶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사다가 먹여주고 싶었다. 남 목사의 훈계가 듣기 싫다고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던 아이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손버릇이 나쁘던 아이도 차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친구들과 늘 싸우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 물건을 다른 아이에게 선뜻 빌려주는 넉넉한 모습도 봤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여섯 살 꼬마 유창이는 친구들과 어울릴 줄 모르고 대소변도 잘 가리지 못하는 아이였는데, 유치원에 보내면 매번 며칠 안 돼 곧바로 쫓겨올 정도였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며 때리는 일이 잦았다. 할머니만 없으면 곧바로 교회로 달려오는 유창이가 안쓰러워서 17세까지 책임지고 키울 테니 맡겨달라고 할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요즘 유창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유치원에서도 누구보다 듬직하고 착한 아이가 된 유창이를 볼 때마다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란다.

잘 자란 아이들도 꽤 있어요. 고등학교 잘 마치고 군대 갔다 와서도 잊지 않고 가끔 들르는 청년도 있구요. 얼마 전에는 여학생 하나가 남자친구를 데리고 번듯한 차를 타고 왔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대견하던지….”두 딸 지혜와 은혜도 고생이 많았다. 아이들이 두 딸을 때리고 괴롭히는 통에 딸들의 반항도 감수해야 했다. 엄마는 왜 언니 오빠들을 받아들여서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따져 물을 때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럴 때면 가난한 자는 돕고, 배고픈 자는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이해심 많고 심성 착한 두 딸은 이제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생들을 챙기고 공부도 가르쳐주면서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불어난 빚으로 경매 위기에 놓인 교회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절망감도 듭니다”그러나 요즘 도봉산교회는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수십 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위험하게 허물어져가던 집을 다시 짓느라 어쩔 수 없이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까지 간경화 판정을 받아 더는 일할 수 없게 됐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이삿짐센터에서 막일을 하며 한 달에 1백만원을 벌어다 주었는데, 이제 그나마 고정 수입이 없어진 것이다.

평소 인근 초등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며 푼푼이 돈을 벌어온 남 목사 역시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개천으로 구르는 바람에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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