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혜자, 아프리카 고통 받는 아이들과 함께한 12년
“세상 사람들에게 내 눈을 빌려주고 싶네…고통받는 이들을 보라고”
미디어다음 / 김진경 기자
지난해 3월, 배우 김혜자 씨는 세계 극빈국 가운데 한 곳인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으로 향하면서 두 번째 황열병 주사를 맞았다. 1992년 여름 에티오피아로 떠날 때 맞은 주사의 약효가 유효 기간인 10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전쟁의 상처와 가난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수십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흙 길을 달리며, 사막을 건넌 지 올해로 12년.
그는 “거기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소리, 눈물과 신음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슴에 찍어두었다”. 그 가슴 언저리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을 주워 담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 미래)는 책을 냈다.
22년간 한 몸으로 살아온 드라마 <전원일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주어진 시간에 펜을 들었다. 그리고 1년 3개월. 대학노트 10권을 쟁겨놓고 시작한 글쓰기는 여섯 권째를 써나갈 무렵 책한권으로 마무리됐다.
탤런트 김혜자 씨와의 인터뷰는 극동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김혜자와 차 한잔’이 끝난 지난 22일 오후 방송국에서 1시간 남짓 이루어졌다. 그와의 인터뷰는 아프리카로의 긴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마치 딸에게 소곤소곤 들려주는 것처럼 진행됐다.
탤런트가 직접 책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인데…책도 탤런트가 썼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쓰셨던데.
탤런트를 무시하셨구나.(웃음) 저는 이 책이 유려한 필체로 쓰여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쓴 것에는 겸손하지 않겠어요. 고통의 땅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단지 숫자와 통계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제 가슴에 담아온 생생한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 책을 썼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은 분들의 마음에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요. 유명한 배우시니 책보다 연기 활동으로 더 큰 도움을 주지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내가 본 것들이 가슴속에 다 있는데 막상 글로 쓰려니까 어떻게 써야 할 지 막막하더라고요. 그 동안 써 놓았던 일기와 비행기 안에서 메모해 놓았던 것들, 그리고 방송국에서 동행 취재한 테이프들을 수십 번씩 보면서 썼어요. 방송에서는 제가 어떤 얘기를 하고 표정을 지으면 그것이 그대로 전달되지만 책에서는 나오는 울음을 글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책을 쓰는 동안에도 ‘내가 무슨 글을 써’ 하는 심정으로 대학노트를 덮었다가 꺼내기를 수십 번 했어요.
그는 책 한 권을 팔면 1,000원이 자기 몫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1원도 갖지 않는다. 인세는 모두 비영리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내질 예정.
그는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책을 쓴 것이고, 당연히 그 아이들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1,000원이면 아이 1명이 사흘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수백 억원 수천 억원이 아무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그는 1,000원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내 삶이 너무 사치스러워 창피하기만 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지난 12년 동안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소말리아, 르완다, 방글라데시, 라오스 등 14개 빈곤국을 찾아 다녔다. 출발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비영리 기독교 자선 단체인 월드비전 한국지부에서 전화가 걸려왔어요. 공짜로 보내준다고 하더라고요. 아프리카는 언제 또 가보겠어요. 그것이 제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독초만 6개월을 먹는 아이들,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반군 대장의 아이와 정부군 대장의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던 열여덟 살의 레베카, 눈만 흘겨도 바스러질 듯한 낡은 옷을 입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들도 채워져 갔다.
서울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배우로서 명성을 떨치며 가난이라는 것은 겪어본 적도 없을 줄로 압니다. 전 세계 가난하고 불행한 아이들의 어머니를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가난한 나라, 처음에는 낭만적으로 생각했어요. 또 가난이라고 해도 그저 우리나라 가난 정도를 생각하고 갔지요. 그런데 1992년 처음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너무 놀랍고,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인생 헛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흘 동안 머물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그의 다짐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몇 개월 후 월드비전측으로부터 소말리아 방문을 제안 받고 고민하던 중 받은 한 통의 전화가 그의 발길을 소말리아로 향하게 했다. “구로공단에서 미싱사로 일한다는 어떤 처녀로부터 전화를 받았어요. 방송으로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8만 1,000원을 모았는데 그 돈을 그 아이들을 위해서 돕고 싶다고 했어요. 그 전화를 받고 ‘이 처녀가 또 나를 소말리아로 가게 하는구나…’ 생각했죠. 구로공단에서 미싱사로 일하며 받는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 마음이 너무 고와서 가기로 결정했고, 그 후로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모하메드, 레베카 등 50명 아이들과 결연을 맺고 있는데 어떤 과정으로 선정된 건가요. 비용은 어느 정도 드는지.
제가 결연 아이들을 직접 선정하지는 않아요. 물론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도 있지만 전 몽골에는 가지 않았거든요. 몽골 아이들은 직접 만난 아이들은 아니고, 월드비전 소개로 결연을 맺은 아이들이에요. 50명 가운데 1/3이 직접 만난 아이들이죠.
한 달에 2만원이면 이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학교를 다니게 할 수 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한 달에 100만원 남짓입니다.
‘마담 킴스 프로젝트’란 무엇인가요.
가장 최근 일이라 눈에 선한데요. 지난해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반군 대장의 아이와 정부군 대장의 아이를 낳아 키워야 했던 열여덟 살의 레베카를 봤고, 자신의 잘못도 모른 채 마약에 취해 살인을 저지르는 소년병 모하메드도 만났어요.
저는 월드비전의 친선대사이면서 후원자에요. 후원금을 내면서 그 돈은 시에라리온의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요청했죠. 시에라리온 월드비전측이 사십 가정을 선별해 식량지원과 기술훈련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시에라리온 월드비전측이 ‘마담 킴스 프로젝트’라고 명명했어요.
그는 “제가 무슨 타이틀을 붙였겠어요?”라고 반문하며,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것이어서 아직 자리잡지 못했지만 많은 후원자들이 나타나서 세계 극빈국 가운데 하나인 시에라리온의 가정들이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인도도 우리나라 돈 6만원에 불과한 50달러 때문에 평생 잎담배를 마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외국 배우들 중에서도 공적인 사회봉사활동을 벌이는 경우가 가끔 외신을 통해 전해지기도 하는데.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나요.
스물 한 살 탤런트 시험을 봤어요. 그 당시는 배우가 된다고 하면 부모님이 반대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는데 저희 아버지는 반대 없이 허락하셨어요. 문호 톨스토이가 많은 영향을 미쳤듯이 배우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려면 공부는 많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 당시는 사회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아니었지만, 중요한 배우가 되고자 노력했어요.
김혜자씨의 부친 김용택씨는 우리나라 경제학 박사 2호. 15년 동안 미국과 일본에서 고학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군정 치하에서 재무부장(장관급)을 지냈고, 정수 수립 후에는 보사부차관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를 로맨티스트이며 자유주의자였다고 회상했다.
“사랑 받는 배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 일을 10년이 넘도록 하고 계신데요. 하지만 명예와 부를 모두 가진 배우의 ‘자기만족’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연기에 모든 것을 마치며 살아왔어요. 많은 분들에게 사랑 받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명한 배우가 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계속 사랑 받아야 이 일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배우니까 얼마나 권력과 재력을 가진 분들과 악수를 나누고 담소를 했겠어요. 하지만 제 손이 아직도 기억하는 것은 죽어가는 아이들의 손을 잡았을 때, 아이들의 힘없는 손의 감촉을 제 손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들의 손을 오래오래 잡아주고 싶어요.
가진 자의 ‘시혜’에 다름 아니라는 비딱한 시선으로 그의 책을 봤다. 또 그를 만났다.
그에게 어쩌면 이런 일들은 ‘인류에 봉사한다’는 자기만족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하지만 세간의 질시들을 끌어모아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보려 해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가진 자가 아니라 갖지 못한 자에게 내민 그의 손은 어떻게 설명할까. 10년을 한결같이 힘없는 어린이 손을 맞잡아온 그의 손은 따뜻하고 정말 따뜻한 것 아닐까.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와 입장에서 정치를 경험하고 바라봅니다. 한국의 대배우로서 최근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지켜보는 심정은 어떤가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