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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일본을 통해서 접촉된 기독교 조회수 : 2705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03-02-12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후 유럽지역에서 프로테스탄트(개신교)가 확대되어가자 여기에 위협을 느낀 카톨릭은 예수회라는 선교단체를 조직하여 개신교의 교세확장을 봉쇄하였다. 그러나 예수회는 유럽에서의 활동보다 당시 해운력을 장악하고 있던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도움으로 세계도처에 퍼져나가서 선교에 몸바치는 선교단체로 발전하였다.

예수회의 신부였던 사비에르가 일본에 상륙한 것은 1549년 7월이었다. 그는 불교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통치자 오다 노부나가의 관용아래 상당한 포교의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이러한 관용정책은 다음의 실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까지 이어졌다. 그는 당시 일본 안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강력한 무사들의 힘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임진왜란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의 10%이상이 기독요인이었다고 한다. 특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고니시 군단장의 휘하에 있던 군사들은 거의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일본군은 곳곳에서 저항하는 의병과 명나라 지원군에게 쫓기게 되었는데 이때 고니시는 본국에 종군신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렇게 해서 파견된 사람이 세스페데스 신부였다. 이렇게 파견된 세스페데스는 역사상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기독교 성직자가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일본의 예수회 본부로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의 내용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겪고 있던 참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의 편지는 금도 일본의 고서(古書)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고니시 휘하에 있던 불교신자였던 악명높은 기요마사의 모함 때문에 본국으로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 소환된 세스페데스는 전쟁 중에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노예로 팔려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포로들을 감옥에서 탈출시켜 신변을 보호해 주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각종 교리서를 조선어로 번역한 후 이들을 가르쳐서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었다. 이렇게 하여 부분적으로나마 기독교와 접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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