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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수난 당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조회수 : 2375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수난 당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출발한 프로테스탄트 선교이지만 명동성당의 건축이 발단이 되어 전도를 금지 당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카톨릭교회에서 현재의 명동 높은 언덕에 성당을 짓게 되자, 왕궁이 내려다보이는 위치라 하여 금지하였지만 그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고 건축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조정에서는 전교 금지령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미국 공사는 벽지를 돌며 전도에 열중하던 언더우드를 급히 상경하게 하였는데, 이때 선교사들은 조선에서의 선교사업이 끝장난 줄 알았을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였다.

더구나 이른바 “어린이 반란”이라는 유언비어가 떠돌면서 선교사들은 위험한 처지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외국인들이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눈알을 빼내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는 음흉한 유언비어였다. 이 때문에 선교사와 상종하던 관원 9명이 처형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가운데 처참한 박해가 평양에서 터졌다. 당시 부호들의 자제 다수가 기독교에 입교하였는데, 한번 거사를 통해서 이득을 볼 것을 노린 덕천 부사 신덕균이 감리교인들을 잡아다가 난타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때문에 감리교 선교사 홀과 장로교 선교사 마페트가 서울에 있는 영국과 미국의 외교관을 통해서 황실과 교섭하여 박해가 중지되었다.
황해도에서도 리목사의 순회전도를 계기로 무서운 환란이 일어났는데, 서교를 박멸한다는 구실로 교회를 때려부수고, 교인들을 무차별 난타하였다.

1899년 11월 6일에는 보부상의 두목인 길영수가 독립협회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남궁억 등의 기독교인을 학살하려는 난동을 부렸고, 심지어는 정동교회까지 파괴하려하였다.
1900년 5월에는 경무사 김영준과 내장원경 이용익이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계획을 세운 후 고종에게 기독교의 폐해를 상소하여 12월1일에 국내의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교인을 살육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알게 된 언더우드는 고종의 총애를 받고 있던 알렌의사와 또한 외교통로를 통하여 선교사와 교민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였고, 국왕의 준엄한 칙령이 각도에 발송되어 엄청난 살육계획이 무위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수많은 위협을 극복하면서 차근차근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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