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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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맺는말 1 조회수 : 307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7-13
기독교가 이 땅에 처음 복음의 씨를 뿌릴 때, 그것은 나라의 안정에 위협과 협박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기독교 선교는 단순한 복음이 아니라 서양의 문화와 종교적 군사적 함수관계 때문에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불 때는 당연히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세계 교회역사상 가장 참혹한 순교의 황금페이지가 기록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박해를 구실삼아 이 나라를 침공해 온 서구 세력은 기독교를 구원과 고난의 종교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자들의 종교로 이해하게 만드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새롭게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의 침략적 강탈 맞서는 아주 미묘한 시점에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따라서 허물어져가는 왕실의 비애와 나라 잃은 백성들은 그 아픔과 하소연을 고스란히 수용하면서 그 고통을 세계로 알리는 통로의 역할을 하였고, 무지한 백성의 개화와 계몽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교회는 선교사의 손에서 몸부림쳤다. 1907년 선교사들은 한국교회의 비정치화를 단행하였다. 참여의 신앙, 성육신의 신앙은 소위 경건주의 신앙과 고고한 신앙의 형태로 변질을 강요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백성들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았다. 105인 사건을 통해서 교회는 겨레의 이름으로 수난의 길을 간다는 이미지를 남겼고, 3.1운동을 통해서 그 기발한 영력과 시세 판단으로 민족의 승화된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폭제역할을 하였다. 이를 통해서 민족의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교회의 선한 발길과 의미있는 사역의 마지막 발걸음이 되었다. 1920년대의 사회변화에 직면한 교회는 그 변화에 맞서서 목소리를 내거나 또는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었다. YMCA에서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교회가 힘을 상실하게 된 원인은 교회가 사회의 변화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선교사들의 획일적인 신앙교육과 저질적인 경건주의 교육이 그 원인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에 대해서 항거하기 시작하였는데, 미묘하게도 이것이 일제의 교회 탄압과 시기적으로 일치함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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