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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6.25와 교회의 피해 조회수 : 411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7-06
6.25전란을 겪으면서 받은 손실과 참화는 너무나 컸다. 그러나 기독교회가 받은 비극의 깊이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준엄히 공산당에 대항하던 목사들을 남북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으며, 여수반란사건 때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였던 손양원목사와 저명한 부흥사 김익두목사가 처형되었고, 구세군의 노영수, 장로교의 박경구, 정일성, 감리교희 송정근, 1930년대의 농촌선교의 기수였던 조민형과 신석구, 그리고 남궁혁, 양주삼, 송창근, 박현명 등의 제 목사와 신학자들이 납치되어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이 사변을 통해 파손, 손실된 교회의 수는 장로교회가 152개, 감리교회가 84개, 성결교회가 27개, 그리고 구세군이 4개 교회, 기타 교파에서도 그 손해는 막심했다. 또한 순교, 납치된 사람의 수는 장로교회는 장로교회가 177명, 감리교회가 44명, 성결교회가 11명이었다. 그러나 이 통계만으로는 교회가 그 뿌리로부터 받은 아픔과 고난을 다 표명할 수는 없었다. 전북 옥구군 원당교회에서는 교인 75명의 교인 중 73명이 학살을 당하였고, 이런 일은 전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6.25사변이 교회에 준 비통한 상처는 사실 이런 외형적인 피해뿐만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 나타난 파탄과 자학의 수치는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상처를 깊이 남겼다. 그 하나가 적색목사의 행패였다. 괴뢰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유린할 즈음, 경동교회의 김옥이 “기독교 민주동맹”을 결성하여 YMCA에 간판을 걸고 김일성의 환영식을 감행하였으나, 교인들의 불참으로 시들하게 끝났으나, 공산주의 사상범으로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전직목사 김문식은 숨어있는 목사들을 색출하여 궐기대회에 기독교 대표로 참여시키거나 남북통일 호소문들을 세계에 발송한다하여 서명을 강요하였고, 그의 요구를 듣지 않을 경우는 생존을 위협하였다. 특히 강제노역에 동원된 기독교인들의 태도에 적극성이 결여되었다하여 60여명의 목사를 투옥시켰고, 김윤실, 전인선목사를 죽이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 부산에 피난 온 교회는 역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각 교파 연합으로 구국기도회를 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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