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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 존 헬론 ① 조회수 : 306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6-18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 존 헬론 John W. Heron

고종황제의 윤허에 의해 의사와 언어교사가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조선을 향해 떠나려는 선교사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먼저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심한 젊은이는 의사였던 존 헤론(John W. Heron)이었다.

그는 1858년 6월 15일 영국에서 출생해서 14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조선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얼마를 준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겠습니다. 조선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조선을 향한 마음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기 까지는 많은 장벽이 있었다. 특히 그의 모교인 테네시의과대학에서는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존 헤론을 교수로 내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우수한 성적은 선교사로 헌신하려는 그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다. 그가 교수와 의사로 본국에서 지낸다면, 그의 앞길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부와 명예가 보장된 길을 뒤로하고, 온갖 질병이 득실거리는 낯선 조선 땅에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땅 끌과 열방을 품은 주님의 마음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조선에 파송되는 공식적인 첫 번째 선교사가 되기 원했지만 갑신정변이 일어나면서 그의 귀국은 더욱 지체되었다. 그래서 그는 얼마간 일본에 머물면서 조선말을 배우며 선교사 활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중 나중에 파송을 받고 왔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선교사가 1885년 4월5일 입국하게 되면서 그는 바로 뒷배로 출발하여 1885년 6월21일 조선 땅에 입국하였다.

그 후 헤론은 국립병원 격인 광혜원의 병원원장으로 임명되어 환자를 돌보게 되었으며, 그 병원은 서울 을지로 2가(외환은행 본점자리)로 이사를 하면서 제중원이 되었고, 나중에 세브란스 병원으로 발전하게 된다.

광혜원이 왕족과 양반계급을 위한 병원이었다면 제중원은 모든 천민에게까지 혜택을 주기 위한 병원이었다. 그는 그 병원에서 5년간 사역 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였다. 헤론선교사는 선교사님들이 모두 피서를 떠난 후에도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보다가 이질로 눕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일하던 조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 땅에서 그 귀한 생명을 마감하였다.

그가 죽자 그를 묻을 수 있는 곳이 없었던 선교사들은 고종황제에게 헤론의 유해를 묻을 수 있는 땅을 요청했고, 고종은 성에서 10리 떨어진 양화진에 그를 묻을 수 있는 땅을 주었다. 헤론은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양화진은 120여명의 선교사가 묻힌 한국 개신교의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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