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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Boys be Ambitious! 윌리엄 클라크 조회수 : 301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11-16
일본의 북해도 삿포로시에 있는 북해도대학 농과대 교정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상이 하나 서 있다. 그것은 “Boys be ambitious!”라는 말로 유명한 윌리암 클라크(William.S.Clack) 박사의 동상이다.

그는 19세기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요, 농학자로서 1876년까지 미국 메사추세츠주 주립 농과대학 학장으로 재직하였는데, 당시 일본 정부가 삿포로(북해도)에 설립한 농림학교의 초대 교장으로 초청하였다. 이 초청에 응한 그는 1876년 7월초에 조수 2명과 학생 11명을 데리고 미국을 떠나 일본 요꼬하마를 거쳐 7월 말에 삿포로에 도착했다. 이때 클라크교 교수는 생물학 서작보다 많은 양의 성경을 가져왔는데, 삿포로 대학 측에서는 성경의 반입을 불허하였다. 그러자 배를 돌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클라크 교수의 강경한 태도에 대학 측이 굴복하였고, 성경의 반입이 허락되었다.

1876년 9월에 삿포로 농림학교는 개교되었다. 개교 후 일본의 한 관리가 교칙을 만들어 가지고 교장인 클라크 박사를 찾아왔다. 그때 클라크 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규칙으로 인간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신사가 되라(Be gentleman!)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교칙을 아예 없어버렸다.

그 후 계약 기간이 끝나고, 학교를 떠나기 전에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고별 연설을 하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 그 유명한 "Boys be ambitious!"(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였다. 그 후 삿포로 농림학교는 북해도 농과대학으로 발전했다.

클라크 교수는 학교를 떠났지만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학교 측에서는 학교 교정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동상 밑에사 그의 마지막 외침을 새겨 놓았다. 이 외침은 지금도 북해도농림학교 뿐 아니라 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

당시 일본은 1868년 실시된 명치유신 이후, 사회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구각의 기강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으므로 일본 역사는 그 시대를 일대혼란기라고 일컫는 일종의 과도기 였다. 또한 서구의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삿포로 농림학교 출신들은 졸업 후 사회 각 계층으로 배출되어 일본을 바로 이끌어가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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