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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호남지역 선교의 주역, 존 F 프레스톤 조회수 : 3347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1-20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호남지역 선교의 주역, 존 F 프레스톤 (Preston, John Fairman)

1875년 미국 조지아에서 출생하여 테네시주의 킹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신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한 프레스톤선교사는 미국 남장로회 소속으로 1903년에 내한하여 변요한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1940년까지 목포 광주 순천 등 호남 지역에서 선교사와 교육자로 약40년간 활동하며 호남지역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프레스톤 선교사는 부인과 함께 목포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음에 목포를 중심으로 해남 강진지방의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그후 선교 지역을 호남전역으로 확장하여 선교본부를 광주로 옮겼고, 더욱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광주에 거주하면서 4년 동안 목포를 왕래하며,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1905년에는 목포에서 영흥학교 교장으로 학교건물을 건축하기도 하였으며, 강진의 학명리교회, 매곡교회, 해남의 원진, 맹진, 남창교회를 설립하였다.

이 무렵 광주에서 의료선교를 맡고 있던 오웬이 별세하였다. 광주에서는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선교사가 유진선교사 뿐이어서 부득이 사역지를 다시 광주로 옮겨 오웬 선교사의 후임자로 사역을 해야만 했다. 1908년 광주에서 숭일학교 초대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0년에는 학교건물을 건축하였다.

1912년, 프레스톤 부부선교사는 순천지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1913년 4월에 순천에 선교사 주택이 완공되자 순천으로 이사하였다. 순천은 필요한 인적 물적 장비를 모두 갖추어진 상태여서 선교지로 개설한 한국 최초의 유일한 선교 거점 도시였다. 크레인과 힘을 합하여 순천에 매산학교를 설립한 때도 그 무렵이었다. 다시 티몬스와 함께 순천 알렉산더 병원을 설립하고, 농촌교역자와 지도자를 양성하기도 했다.

또한 순천에서는 가곡리교회와 평중리교회, 사룡리교회의 설립에 기여하였다. 1918년에는 순천읍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교회역사 수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여수지역에서 여수, 장천, 봉양, 우학리교회와 여수서교회, 봉전리교회, 서정교회에서 동사목사로도 시무하는 등 그의 사역은 쉴 틈이 없었다. 또한 그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순천노회장을 지내는 것을 비롯하여 여수와 순천지역 여러 교회의 설립과 당회를 조직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도 완도 관산리교회를 설립하였고, 나주 삼도리교회, 덕곡교회, 해남 고당리교회, 무안 성남리교회 등에서 시무하였다.

940년 일제의 압력으로 미국으로 귀국하여 조지아주에서 데카터 장로교회와 아틀란타 노회에서 활동하다가 1975년 4월 30일 별세하였다. 양화진에는 태어난지 한달 만에 죽은 그이 아들 사무엘 F 프레스톤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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