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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우리나라의 체육발전에 공헌한 반하트선교사 가족 조회수 : 2773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12-27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양화진의 사람들)
우리나라의 체육발전에 공헌한 반하트선교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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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B. P. 반하트는 미국에서 출생하여 1915년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일리노이주 페오리아 YMCA 소년부 간사로 일하다가 1916년 3월4일 소년부와 체육부 지도자(간사)로 부인과 함께 내한했다.
그는 1916년 5월 6일, 새로 지은 YMCA 실내체육관을 개관할 때부터 청소년 체육사업을 권장하고, 실내 체육을 비롯한 야구 축구 육상 등을 발전시켰다. 특히 배구는 반하트에 의하여 1916년 2월 처음으로 소개되어 이목을 끌었으며, 한국 배구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그는 1907년 질레트에 의하여 들여온 농구를 발전시키고자 농구부를 창설하기도 했다.

반하트는 “체육은 신체적 건강과 생활을 명랑하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실내 체육운동은 추운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이나, 저녁에도 운동 할 수 있다”고 적극 권장했다. 실내체육에 관하여 1916년 9월 30일에 기록한 활기찬 그의 보고서에는 “실내 체육관은 대 인기이다. 지금까지 참가한 연 인원은 17,668명이고, 소년부의 연 인원도 24,756명에 달한다. 만약 운동기구를 더 보완한다면 더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많은 성과를 거둘 것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한편 1919년 9월30일 보고서에는 “추운 겨울에도 쉼 없이 운동을 했다. 몇 해 전만해도 신사들과 그 자제들은 운동경기를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이 일변하여 모든 신사들이 운동을 즐기게 되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YMCA의 공헌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연중무휴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은 YMCA 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는 YMCA 체육시설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하면서 체육 프로그램은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생활을 명랑하게 하여주는 사회적 친교의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반하트는 전국을 순회하며 농촌의 청년 지도 등 계몽운동에도 참여했다. 3‧1운동 이후 실의와 좌절에 빠진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한 문서 선교의 일환으로 1923년 ‘신생명(The New Life)’ 잡지를 발행하였고, 1926년 12월부터 “靑年”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1937년까지 활동했으며, 그 외의 문서선교에도 최선을 다했다. 1929년 9월 16일 ‘농촌사업협동위원회’가 창립 될 때 그는 서기 겸 실행위원으로 선임되어 농촌 계몽운동에도 깊이 참여했다.

그는 서울 YMCA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으며, 1938년 한국 YMCA가 강제로 일본 YMCA 산하로 조직될 때 명예총무로 선임되기도 하였으나 1940년 11월 25년간의 한국활동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태어닌 B. P. 반하트의 큰 아들은 태어난지 1년만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은 2년만에 질병으로 사명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양화진 제1묘역에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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