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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에 내한한 이탈리아 최초의 외교관 U.F 말그 조회수 : 308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8-07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국에 내한한 이탈리아 최초의 외교관 U.F 말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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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F. 말그라는 해군출신의 외교관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 한국 최초의 이탈리아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1901년 12월 8일 서울에 도착하였고, 일주일 후 그의 신임장이 고종황제에게 제정되었다.

그는 서울의 미국 장로회 선교부 건물을 빌려 외교관의 업무를 시작했는데, 급격하게 증가하는 외국인 사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이 무렵 서울과 인천에는 4백여 명의 서구인들이 살았고, 서방 국가의 기선과 전함들이 격일로 드나들었다. 외국인들은 여러 형태의 동아리 모임을 조직하였으며, 각국 외교관들도 그들만의 클럽이 있었다. 이때 말그라는 24세 젊은 미혼 남자로 교육과 수양을 겸비하여 수명의 미혼 여성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말그라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미국 총영사 패독과 벨기에 부영사 쿠벨리어였다. 그런데 이들의 우정은 미국 사업가 콜브란의 딸 크리스틴으로 인하여 문제가 생겼다. 즉 벨기에 부영사 쿠벨리어는 크리스틴에게 매혹되어 청혼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한편 크리스틴은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탈리아 공사 말그라를 좋아했다. 그 후 미국 총영사 패독이 가세하여 이들의 3각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되었다. 어느 미국인 선교사는 크리스틴의 결혼 문제는 이상하게 꼬였다고 말했다.

이 무렵 젊은 외교관들과 외국 사업가의 자녀, 그리고 젊은 미혼 선교사들은 서로 간에 교제를 나누었다. 테니스, 승마, 등산 등을 함께 하면서 교제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902년 9월 서울의 외국인들에게 큰 위험이 다가왔다. 레라 전염병이 번져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장티푸스 전염병도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인의 통역관이 사망하고, 오스트리아 방문객도 사망하였다. 말그라와 크리스틴에게도 큰 위험이 찾아왔다. 말그라는 열로 인하여 앓아눕게 되었는데 진단해보니 장티푸스로 판명되었다. 두 젊은 간호사가 자원하여 그를 극진히 보살피고 의사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였으나 결국 1902년 10월 12일 별세하였다. 그를 사랑했던 크리스틴도 한달이 조금 지난 1902년 11월 18일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한국 땅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양화진에 나란히 묻혔다. 그리고 그 후 미국 총영사 패독의 아들도 1908년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다.양화진에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전염병으로 죽어간 이들 젊은이들의 사연이 담긴 장소가 된 것이다.

양화진에는 또 다른 이탈리아 외교관 카세티 묘도 있다. 한국의 기후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생활 7년 만에 25세의 나이로 1923년 4월 18일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장례식은 정동교회에서 스티븐스 구세군 사령관 인도로 진행되었다. 양화진에 건립된 카세티의 묘비에는 ‘평안히 잠드소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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