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중국역사기행 |
조회수 : 2078 |
작성자 : 김정주 |
작성일 : 2003-08-19 |
2003. 8. 11.... 1번째 날...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교회에 도착하였다. 이천에서 초기 멤버가 모이자 교회의 흰 봉고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오늘 지금 이 시각에 나는 집을 떠나 이천을 떠나 한국을 떠나 우리나라 남한의 96배나 넓은 대륙, 13억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으로 그 찬란한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 떠난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좀 기다리자 목사님을 포함한 14명의 일행이 모두 도착하였다. 비행기시간이 되자 공항 속에 있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내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그냥 좀 흔들림이 심한 버스를 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의 도움으로 자리를 바꿔 작은 창문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었기에, 작아지는 마을과 다양한 구름을 볼 수 있었기에 첫 비행기에의 추억은 행복했다. 2시간 후에야 소음을 내며 비행기가 착륙하고 북경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동양인이 많아서 낮설진 않았다. 가이드 언니와 약간의 만남을 가진 다음 헤어져서 다른 비행기를 탔다. 국내선이라서 그런지 비행기 크기도 작았고 서비스도 더 좋았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연변에 도착했다. 연변은 조선족 자치주라서 40%의 조선족이 거주하며 간판에 한국어와 한자가 같이 쓰여있었다. 여기서 새로운 가이드 언니와 뻐스 운전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두분 다 조선족이라서 한국어에 능통했다. 중국 뻐스는 특이하게도 빽미러가 토끼귀처럼 생긴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뻐스를 타고 도착한 식당에서 한식식사를 했는데 회전판이 있어 편했다. 한식이였지만 맛은 우리나라의 맛과는 좀 달랐다. 식사를 마치고 뻐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2명당 1방식으로 4층 1433호에서 2박3일을 지내게 되었다. 내일을 기대하며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2003. 8. 12.... 2번째 날...
오늘부터 본격적인 역사기행이 시작되었다. 호텔에서 식사를 한 다음 처음으로 간 곳이자 가장 감동이 깊었던 백두산 천지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 가이드 언니가 중국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또 기초적인 인사와 숫자도 가르쳐주었다. 5시간정도 지나자 장백산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백두산이 장백산으로 불리나 보다. 여기서는 지프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나와 가이드 언니를 포함한 4명은 40번의 지프를 타고 천지를 향했다. 아저씨가 과속을 해서 먼저 가던 지프를 추월했다. 커브길에도 능숙하게 빠른 속력으로 달렸지만 20분 정도나 걸렸다. 역시 백두산의 2,744m의 높이는 무시 못할 숫자였다. 천지를 보니 멋있다 아름답다 영롱하다라는 말만으로는 모든 것을 표현 할 순 없었다. 사진보단 못하지만 (천지도 사진발이었다ㅠㅡㅠ) 실제에서 느껴지는 기품, 맑고 투명한 천지의 물, 공기, 바람 등...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껴봐야 진정으로 천지에 가보았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시각이란 감각 하나만으로 느낄수 있으므로 천지의 높고 웅장한 무언가를 다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따를 것이다. 천지에서 아쉬운 점은 제한시간이 30분이란 점과 크고 웅장한 천지를 내 작은 디카로서는 모두 다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를 들자면 1/3은 중국땅, 2/3은 북한땅으로 우리나라의 반쪽땅을 코앞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쉬움을 초월한 불만으론 공중화장실인데,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그래도 관광지인데 어떻게 그리 상태가 안 좋은 걸까?) 아쉬운 발걸음으로 천지를 나와 다시 지프를 타고 내려왔다. 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장백폭포로 행했다. 가는 동안 목사님께서 백두산이라는 시를 읊어 주셨다. 백두산 같이 크고 웅장한 산도 천지라는 커다란 눈물샘을 가지고 있듯이 정상에 있는 사람이 될려면 어려운 시련을 거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이 시가 가슴속에 와 닿았다. 조금한 시련 앞에서도 금방 무릎을 꿇던 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부끄러워 졌다. 앞으론 내 꿈을 행해 더 이상 주저 않지 않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겠다. 어느새 폭포입구까지 왔다. 오르막길과 계단이 많아 산 오르는 듯한 기분으로 힘겹게 올라갔다. 천지로부터 세 갈래로 내려오는 폭포의 모습이 마치 세 마리의 수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했다. 폭포에 온 기념 삼아 천지의 물로 얼굴을 식혔다. 물이 꽤 차가웠다. 내려가서 온천물에 담겨져 있던 계란을 먹었다. 온천물에서 피로를 풀은 계란이라 다른 계란보다 한층 더 맛있었다. 또 다시 뻐스에서의 지겨운 5시간이 시작되었다. 더군다나 시골길이라서 흔들림이 심해 멀미로 꽤나 고생을 했다. 가는 도중에 조선족마을에 들렸다. 마을이라기 보단 집 한채가 더 옳은 것이다. 창문이 다 깨진 으스스한 초가집인데 사람이 산다는게 신기했다. 연길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야시장으로 갔다. 줄무늬 없는 수박같이 한국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