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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혜린이의 南漢山城 기행문 조회수 : 2407
  작성자 : 이혜린 작성일 : 2005-02-25
8시까지 난 교회로 갔다. 난 벌써 출발한줄알고 황당해 했다.
그리고 둘러 보니 한 의자에 석현이가 앉아 있었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후에 지언이 언니가 오고... 텅 비어 있던의자가 차례차례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나오셨다. 목사님이 말씀을 하시고....그러다 보니 벌써 30분이다. 우린 출발을 했다. 그런데 다시 목사님이 차를 돌리고 아파트로 가서 남,여 선생님을 태웠다. 그러고 다시 출발하려 할때 시계를 보니 8시 45분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기행이 시작된다.


드디어 남한산성에 도착을 했다. 목사님께서 입을 여신다.
남한산성은 조선인조때 (신라시대) 문무왕이 흙으로 쌓았다.(토성)
그리고 주장성이라고 지었다. (1000년쯤 전에..)하지만 다시 돌로 성을 쌓았다. 그성엔 문이 4개가 있다.(동~서~남~북)우린 동문을 보았다. 동문이름은 좌익문이었다. 그리고 마차가 다니는 수국문도 보았고 물이 이동하는 수문도 보았다.동문은 임금님이 놀러오고 쉬러 오고 많이 들리던 곳이다.

우린 지수당으로 이동했다. 지수당에는 네모난 호수에 가운데 동그란 섬이 있다. 지수당에서는 연애도 베풀고 파티도 하고 시도 읊던 곳이다. 그리고 그당시 사람들은 땅은 네모낳고 하늘은 동그랗다고 생각했다. 지수당으로 부터1km도 안돼는 곳에 있는 남한산성 역사관에도 갔다. 그곳에서 성의 요소를 알았다.(치성,웅성,암문,여장)

우린 현절사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자 발견한 것은 어느 문이다. 그문안엔 못봤다. (좌물쇠로 해놨기 때문에...)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그안엔 사당이 있다고 한다. 사당은 어떤 존경하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우리가 온 사당은 홍익한 윤집 옫달재 라는 사람을 존경하는 곳이다.1627년 정묘호란이 발생했다.(여기서 잠깐! 정묘호란이란? 금나라가 우리나라로 쳐들어오는 것을 말한다.)1636년에 금나라가 커져서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우리나라로 쳐들어 왔다. (병자호란)임금님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가게되고 45일 동안 싸웠다.그리고 파로 나누어졌다.주화파(항복하자파)와 척화파(끝까지 싸우자파)이다.


다음은 남한산성 서문에 갔다.서문이름은 우익문이다.이 서문을 지나 한강끝에 끌려가 임금은 다른나라임금에게 이마가 깨지도록 절을 했다. 이역사는 참으로 많이 부끄러운 역사이다.


다음은 침괘정에 갔다.여기는 무기를 베게삼아 쓰는 곳이다.


다음은 남문에 갔다. 남문이름은 지화문이다. 그뜻은 평화가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뜻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북문으로 갔다.북문이름은 전승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동문서문남문북문 4가지의 문 이름을 다알았다.
다알게된 이유는 목사님이 아주 열심히 설명을 해주셔서 잘 알아서였다. 그리고 이번 역사기행은 유익하고도 재밌기도 하고 힘도 들었지만 이 역사기행을 갔다온 것만으로도 내겐 기쁨이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혜린이는 상품권을 타기위해
큰 노력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상 ~혜린이의 남한산성역사기행문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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