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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여주 역사기행문 |
조회수 : 2377 |
작성자 : 허다솜 |
작성일 : 2005-08-25 |
다솜이의 여주 역사여행 기행문
여주에 8월 24일 9시쯤 출발하여 오후 6시까지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간곳은 가정용 해시계가 있는 김영구 할아버지의 가옥이다. 그곳에 있는 가정용 해시계는 민속자료 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해시계는 장영실이 세종임금 때 만든 것인데 참 훌륭한 과학자였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영실은 부산 동래에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머리가 좋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종3품이라는 높은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생각이 앞서가는 장영실을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못한 것 같다. 임금님이 타는 가마에 수레바퀴를 달아서 임금을 태우고 가다가 바퀴의 고장으로 목숨을 잃을뻔한 임금님은 장영실을 파면하였다고 한다. 그다음으로 간곳은 고달사지 석불좌이다. 고달사는 고달이라는 사람이 혼자 지었다고 한다. 목사님 께서는 미쳐야 좋은 결과에 미친다라고 하셨다. 고달사 석불좌는 부처가 앉는 의자라고 한다. 보물 8호이며 연꽃무늬가 참 아름다웠다. 다음으로 간곳은 원종대사 해진탑비이다. 목사님께서는 해진탑이 뭔진 모른다고 하셨지만 원종대사가 고달사에 많은 좋은일을 하셔서 생긴 기념탑일 거라고 하셨다. 그 탑에는 귀부와 아름다운 이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석은 훼손이 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또한 고달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성경에는 이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다고 한다. 다음으로 간곳은 고달사 부도이다. 국보 4호인 이곳은 스님들이 죽으면 나오는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탑이 있는 곳이다. 이 탑은 다른 사리탑과 틀리게 팔각형 탑이고 돌에 세겨진 연꽃무늬는 복련 이었으며, 부도의 거북이 조각옆에 용4마리가 여의주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모습을 하고 있는 매우 신기한 조각이었다. 돌에다 그 정교한 그림을 새겨넣는 기술이 참 놀라웠다. 신륵사 조사당은 나옹(보재존자)과 무학대사, 지공스님이 함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조사당 안의 바닥은 우물마루 이고 다포집이다. 다음으로 간곳은 보물 228호인 사리탑인데 이 탑은 고달사지 사리탑하곤 아주 다른 모양 인데 석종모양의 사리탑이었다. 목사님 께서는 이렇게 모양이 다른 이유는 사리탑이 만들어진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건축에도 그 옛날부터 유행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층석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석탑이었으며, 윗부분이 많이 회손되어 아쉬웠다. 그리고 벽돌을 쌓아 올려만든 전탑은 공사중이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으며 이 전탑 때문에 신륵사를 벽절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다음으로 간곳은 영월루 이다.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하며 옛날엔 현재있는 위치에 없었는데, 경치가 좋아 옮겼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영월루에서 ‘갈매기의 꿈’을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다음으로 간 곳은 효종대왕 능인데, 이 곳을 ‘녕능’ 이라고 한다.
효종은 우리나라의 17대 왕이며 인조의 아들이었다. 인조 때 청나라와 전쟁을 하다 진 인조는 청나라 왕에게 절을 하고 청나라의 아들나라(식민지)가 된다. 하지만 소현 세자가 인질로 잡혀가고 화가난 봉림대군 (효종)은 북벌정책을 세웠으나 죽고 만다. 목사님께서는 ‘온고지신’(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이라고 하셨다. 다음으로 간 곳은 영릉이었다. 4대임금인 세종은 많은 업적을 남기고 죽었다. 첫 번째는 한글 창제이고, 두 번째는 문학 (용비어천가등)이고, 세 번째는 과학이고, 네 번째는 건축물인 남대문이다. 참 훌륭하신 분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명성황우 생가이다. 명성황후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가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나라에게 도움을 청하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가 일본군에 의해서 죽고 말았다. 참 불쌍하다. 박물관에도 가 보면 명성황후에 대한 자료들이 많다. 오늘 여주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점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백성들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았다는 점이다. 세종대왕도 장영실도 명성황후도...그리고 가난하거나 힘이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본도 몹시 미웠다. 이제 열심히 노력해서 힘을 길러야 겠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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