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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주 역사기행 조회수 : 2257
  작성자 : 박주영 작성일 : 2005-08-26
나는 8월24일에 여주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간곳은 김영국 할아버지 자옥 이었다.
그곳에는 가정용 해시계가 있었다.장영실은 부산 동래에서 태어났다.장영실은 엄마의 기생 때문에 노비가 되었다. 장영실은 똑똑해서 높은 벼슬까지 올라갔다.그러나 생각이 빠른 장영실은 사람들은 인정을 해주지 못하였다.장영실은 임금님이 타는 가마에 바퀴를 달았는데 바퀴가 고장나서 임금님이 목숨을 잃을 뻔 하였다.
장영실은휴대용 해시계를 만들고,가정용 해시계도 만들었다.
김영국 할아버지 자옥에 가정용 해시계가 있었다.
두번째로 간 곳은 고달사 였다.
고달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그곳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신 의자가 있었다.그것은 보물8호 였다. 원종대사 해진탑비가 있었는데 목사님도 잘 모르신다고 하셨다.하지만 원종대사가 고달사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셔서 기념으로 남긴 탑 일거라고 하셨다.그것에는 귀부와 이수가 있어서 아름답긴 했지만 많이 훼손이 되어있었다.
그다음에는 고달사 부도이다. 이것은 국보4호 이다.스님이 돌아가시면 사리를 보관하는 탑이다.다른 사리탑은 밑에가 4각형이지만 그 사리탑은 밑이 8각형이었다.그리고 용 4마리가 여의주를 갖기위해 싸우는 모습도 있었다.돌위에는 복련이 새겨져 있었다.돌에 이런것을 새길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했다.신륵사 조사당은 나옹화상,무학대사,지공스님이 계신 곳 이었다. 안에는 우물마루이고 다포집이다.
그리고 기둥을 받치는 것을 공포라고 한다.다음으로 간 곳은 보물228호 사리탑 이었는데 이탑은 고달사에 있는 사리탑과는 아주 다른 모양이었다.이렇게 사리탑 모양이 다른이유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다음에는 돌을 쌓아 만든 탑을 보았는데 공사를 하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신륵사를 이 탑 때문데 벽절이라고도 한다.다음에는 영월루에 갔는데 시원하고 경치도 좋았다.원래는 그 곳에 없었는데 좋은 경치 때문에 이곳에 옮겨진 탑도 있다고 말씀 하셨다.목사님께서 갈매기꿈을 읽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에는 효종대왕릉<녕릉>에 갔다.효종은 조선에 17대 왕이다.
청나라와 전쟁을해서 지게 되었다.그래서 청태종 앞에서 절을 3번 하였다.왕이 다른나라 왕에게 절을 하는것은 결코 쉽지않은 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영릉은 4대 임금님인 세종대왕릉 이다.세종대왕이 남긴 업적은 한글창제,문화적,과학이다.
다음으로 간 곳은 명성황우 생가이다. 명성황후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니다가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나라에게 도움을 청하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왔다가 일본군 때문에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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