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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충주 역사기행~ *^ㅇ^* 조회수 : 2996
  작성자 : 최우영 작성일 : 2006-08-18
충주역사기행에 갔다. 아침엔 일어나기 힘이 들었는데 엄마가 깨워서 겨우 일어나고 엄마가 늦었어! 빨리 빨리 움직여 하며 말하셨다.
첫번째로 중월 고구려비에갔다. 중원을 좋은 땅이 잘 산 다고 한다. 삼국시데의 나라는 이당을 탐냈다. 또 이 비석은 고구려가 세웠다. 이 비것은 장수왕이 때 세웠다. 또 장수왕이 이곳을 왔다 갇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이런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중월 고구려 비는 "광개토 대왕"의 비석과 비슷하다는것을 알수있다. 쉽게 말하자면 "광개토 대왕" 의 비석을 축소한것 같다. 이 중월 고구려비석은 국보 205호로 지정 되어있다.
봉황리 마애석불군갔다. 바위에다 부처를 조각한것은 고구려때 조각 된것이다. 엄청 오래 됬네~ 이 마애불군은 초기것이다. 옛 사람은 하나님을 모라서 부처를 믿었다. 참 어리석다. 놈 불상하기도하지만... 이 마애불군은 약 1500년전 사람이 만든것이다.
솟대,장승이 많이 있는 곳에 갔다. 솟대는 나무에 새가 있는대 옛날에는 저 것을 믿었다고한다.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그 솟대에게 소원을 빌거나 했다고 한다. 또는 무슨일이 생기면 장승,솟댈를 세웠다. 광원도 강릉인가? 아무튼 그곳에 솟대가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한다.
중앙탑에 갔다. 우리나라 가운데 있어 중앙탑이라고 한다. 이 탑은 통일 신라때 만들었고 정림사지 5층 탑과 비슷하다. 또 통일 시라때의 가장 큰 탑이다.
중앙 탑과 가까이 있는 충주 박물관에 갔다 이곳에는 여러 동물과 여러 곤춘,민속을 볼수있었다.
누암리 오문고에 갔다. 삼국새디의 높은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축측한다.고구려의 풍습이 있는데 늙은 아벼지를 산 깊은 곳에 버리는 풍습이 잇다. 이 풍습은 나쁜 풍습이다.
마창동 마애불에 갔다. 엄 청 시원 했다. 바람도 불고 하니까 엄정 시원했다. 이 마애불은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마애불은 고려시대ㅔ의 유행이여서 그 뒤로 유행은 끝이다. 이 곳의 뒤엔 남한강이 있는데이 물이 양지강으로 간다. 양지강의 특징은 양족에 남한강,북한강이 흘러와 서 양지강이다.
탄금대에 갔다. 신라시대때 강야금을 잘 타던 사람은 우룩선생이 었다. 월래는 우룩선생은 가야의 사람인데 신라사람이 되고 샢다고 해서 왕이 기뻐서 우룩선생에게 신하도 주고 했고 이곳에서 살았다.
우룩선생님은 가야금을 켜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었다고 한다.
충민 공임 경업에 갔다. 병자호란은 두근과 쌍누것이고 임경업장군의 사호는 충민공이다, 임금님이 지어 준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시호는 충모공이라고 한다. 임경업장군은 누명으로 죽었다.
충주댐에 갔다. 댐을 왜 만들었냐면 물을 다스리려고 만든것이다. 댐이 있는 곳은 안개가 끼고 온도가 낮아지는 것이 단점이다.
조동리 이곳에서는 유믈이 많이 발견 되었다. 구석기 유적 사람 발가락 뼈,소로리 점말용국,봉명동,신석기유적:고인돌,대천리,돌무덤,돌도끼 청동기 유물:석기, 선독,간독검등이 있다.
~목사님 수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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