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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충주 역사 기행을 다녀와서(기쁨의 교회) |
조회수 : 2880 |
작성자 : 김은혜 |
작성일 : 2006-08-20 |
오늘 현대교회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충청북도 충주를 갔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마음이 무척이나 설레었다. 충주는 중원. 즉 나라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적지가 참 많았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중원 고구려비’ 이다. 옛날부터 중원은 땅이 기름지고 풍요로우며 한강이 옆에 있어서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삼국시대 때에는 삼국이 서로 탐을 내서 중원은 그들이 싸우는 각축장이 되었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중원이 고구려 땅이었을 때 고구려왕이었던 장수왕이 세웠는데 ‘내가 여기에 왔다 갔다.’ 라는 뜻으로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비인 광개토대왕비를 작게 축소해서 세운 것이다. 지금은 국보 205호가 되어있으며 이처럼 많은 보호를 받고 있다. 이런 고구려가 세력다툼으로 무너져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중원 ‘봉황리 마애석불군’ 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아서 부처를 믿었다고 한다. 참 불쌍하다. 마애석불은 바위돌에 조각한 부처라는 뜻이다. 이것은 6~7세기 고구려시대에 조각된 것이다. 아직 초창기라서 서투른 흔적이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기를 약 1500~1600년 전에 조각되었다고 한다. 나는 바윗돌이 사람을 구원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옛날 사람들이 불쌍하기도 하면서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세 번째로 ‘솟대’ 와 ‘장승’ 이 많이 있는 곳에 가게 되었다. 솟대는 나무로 깎은 새의 형상을 큰 나무에 새처럼 꽂아두었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하늘과 땅의 전령사라고 하며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새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하며 제사를 지내고 절을 했다. 하지만 그냥 모양만 무섭게 생긴 나무토막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솟대가 가장 유명한 곳은 강릉이라는 곳이라고 한다. 그 때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했던 것 같다.
네 번째로 ‘중앙탑’ 에 갔다. 중앙탑은 우리나라 중앙에 있는 탑이라고 한다. 석가탑과 정림사지 5층석탑과 비슷하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때 만들어졌고 그 때 만들어진 탑 중 가장 크다. 지금은 국보 6호로 남아있다고 한다.
다섯 번째로 ‘누암리 고분군’ 에 갔다. 이것은 큰 무덤인데 6~7세기 높은 귀족들의 무덤이라고 고고학자들이 추측했다. 신라 진골쯤의 무덤으로 추측된다. 참 무덤이 컸다. 무덤의 높이가 무려 내 키보다 2~3배정도 컸다. 하지만 진시황의 무덤은 아주 커서 큰 산 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진시황도 죽으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큰 무덤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힘들게 했을까?
여섯 번째로 간 곳은 ‘창동 마애불’ 이라는 곳이었다. 마애불은 바위에 새긴 부처의 형상이며 최고로 유행했을 때는 고려 시대 때라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 조선은 유학을 믿었기 때문에 마애불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곱 번째로 ‘탄금대’ 에 갔다. 이곳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이 나자 왜군은 도성으로 공격해 왔는데 이때 신립이라는 장군이 이곳에서 소서행장이라는 왜장을 만나 8000명의 병사로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던 곳이다. 신립 장군은 강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설화는 예전에 가야에 살며 가야금을 아주 잘 타던 우륵이라는 사람이 신라에 와서 가야금을 타며 왕을 즐겁게 해 주자 왕은 이 탄금대에서 살게 하며 우륵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덟 번째로 임경업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에 갔다. 임경업 장군은 충민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이 시호는 숙종 임금이 내려주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섬기고 있었는데 어느날 후금. 즉 청나라가 형제관계를 청해왔다 하지만 조선은 이를 거절했고 그 때 친명을 주장하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임경업 장군이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전쟁을 했지만 패배해서 인조는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고 임경업은 역적으로 몰려 죽었다. 불쌍한 임경업 장군. 신의를 끝까지 지키다 죽은 충민공 임경업 장군의 충절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을 것이다.
아홉 번째로 ‘충주댐’에 갔다. 이 댐의 고인 물을 흘려보내면 서울까지 잠긴다고 한다. 댐을 만드는 큰 이유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라고 한다. 그리고 농업, 공업용수로 쓰기 위해서도 댐을 만든다. 하지만 기온이 내려가고 자연이 파괴되며 동물의 살 터전을 잃는다. 이번에 댐이 꼭 좋지만은 안다는 것을 알았다.
끝으로 ‘조동리의 유물을 출토해놓은 박물관’을 갔다. 이 충주지역은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기 제작 방법에는 수날법, 윤적법, 권상법이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은 역시 훌륭하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이 충주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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