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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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우리고장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조회수 : 2101
  작성자 : 최광혁 작성일 : 2004-08-26
나는 친구 현태의 도움으로 현대교회에서 어린이 역사 기행을 다녀왔다.
목사님의 친절한 안내로 이천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것을 느끼고 배웠다.
고인돌 부터 시작해서 어재언 장군의 생가 까지 ….
현대교회 목사님 께서 많은 힘을 쏟아주신것 같았다.
우리가 흔히보는 북방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있고
남방식 고인돌은 받침돌이 없다.
고인돌은 청동기 새대부터 세워저 왔다.
공인돌 앞에서는 날카로운 돌칼도 발견 되었다.
구석기 새대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것을 쓰고
신석기 새대는 의도 적으로 날카로운 돌칼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우리나라에 8그루밖에 없는 백송을 보러갔다.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백색의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여러그루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백송을 찾는걸까?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위스 시계는 유명하다 하지만 일본이 전자시계로
스위스의 시계기술을 앞질러 갔다. 하지만 스위스는 특이한 모양의 형형색색깔의
시계를 계발하여 여전히 시계최강국이 되었다.!’ 라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앞으로 특이한 사람이 되어서 이 백송처럼 특이한 사람이 되라고
바른길로 인도해주셨다.
이 소나무는 국보 제253호 정도 될만큼 유명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백송이 있는 대표적인 곳은 서울의 헌법 제판소라고한다.
그다음 우리는 향교를 방문하였다.
향교에는 서당도 있었다.
서당은 지금의 초등학교이고 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이다 또, 사원은 지금의 대학교이다.
대표적인 국립사원은 성균관 이였다고 한다.
어느날, 교육기관들이 교육에는 신경을 쓰지않고 재산에만 관심을 가져서
왕이 교육 기관들을 폐쇠 하였다.
그래서 지금의 초,중,고,대학교가 생긴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이천에 처음생긴 양정여 중,양정여 고를 방문했다.
건물도 허름한 것이 정말 오래된 것 같았다.
이천 초등학교는 본래 고등학교 였는데 학교가 문을 닫아서 가장 오래된
이천의 초등학교가 되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서희장군 동상을 보러 갔다.
나도 여러 번 시내를 들락 날락 거리면서 저 동상을 보았지만 이렇게 유명한
분(서희장군)인줄은 몰랐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주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우리는 힘겹게 설봉산에 올라가 마애불을 보았다.
굉장히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와 눈 때문에 그 모양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점이 정말 아쉬웠다.
옛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정말 친했다고 한다.
자연으로 집도짓고 자연으로 밥도 짓고 자연으로 구경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늘 자연속에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어재연 생가를 방문했다.
지금 사람이 살고 있어서 많이 바꼈지만 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옆에는 충성을 다한사람에게만 준다는 00문도 있었다.
이것이 우리의 알찬하루를 담은 기행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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