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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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조회수 : 2399
  작성자 : 손수환 작성일 : 2004-08-26

오늘 여름방학 과제물로 제출하기 위해서 뜻깊은 경험을 했다.비록 숙제를 하기 위하여 떠난 여행이지만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하여 아직 잘 모르는데 이번 여행은 참 뜻깊은 여행이 될 것같아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번 행사를 주관한 교회로 아침 일찍 동생과 함께갔다. 벌써 많은 아이들이 장소에 모여 있었다 .
현대교회에서 우리고장 이천에 대해서 조사하러 가기로 마음먹고 교회차를 타고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먼저 고인돌을 보러갔다. 그곳에는 고인돌이 3개 있었다.
2개의받침 위에 있는것이 북방식 고인돌이고, 그냥 돌덩이처럼 생긴것이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목사님 께서 가르쳐 주셨다.
고인돌을 구경하고 백사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253호인 백송을 보러갔다. 우리나라에 8그루 있다는 하얀 소나무인 백송이 우리고장에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것 같았다.
그다음 우리는 이천 향교에 갔다. 이천향교는 사립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학교인셈이다. 이천에도 지금의 대학교인 서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흥선 대원군때,철폐되었다고 한다.우리는 이천최초의 학교인 양정여고에도 가보았다. 양정학교와 이천특신(지금의 이천 초) 은 이천의 최초의 서양식 학교라고 한다.
그리고 이천시내 한가운데 있는 서희 동상앞에 갔다. 서희는 18살에 과거급제를하고 거란의 소손령이 고려왕에게 땅을내놓으라고 협박 했을때, 뛰어난 외교술로 거란도 물리치고 땅도 얻은 사람이 서희 이다.
우리고장 이천의 나무는 소나무, 꽃은 진달래, 새는 까치 이다.
이천 시청에서 나온 우리는 설봉산위의 영월암에 가서 보물 822호 마에 열에입상을 보았다.

이천 하면 떠올르는 도자기는 광주에서일하던 관뇨들이 이천으로 들어와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므로 인해 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천율면의 어재연 장군 생가에 갔다.
어재연장군은 미국 재너럴셔먼호의 침략을 막다가 강화도에서 전사한 장군인데, 그런 장군의 집이라고 하니 조금 낡긴 했어도 아주 웅장해 보였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목사님의 말씀도들었다.
미래에는 우리가 이천을 빛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우리고장에 서희나 어재연장군같은 인물들이 있어서 자랑스럽다.그리고 하루 만의 짧은 기행이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천의 역사를잘 몰랐는데 이번 기행에 참가하여 우리고장의 역사와문화재에 관하여 많은 것을 자세히 알게되어 참 기쁘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한번 참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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