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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힘들고 힘들었던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
조회수 : 2162 |
작성자 : 최현태 |
작성일 : 2004-08-26 |
이천에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우리는 처음에는 이천에 3개있는 고인돌을 찾아 보러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인돌 2개는 받침돌이 없어서 그냥 바위인줄 알았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 받침이 있는 것은 북방쪽이고 받침이 없는 것은 남방쪽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 목사님께서 우리에게 퀴즈를 내주셨는데, 북쪽으로 가면 받침이 없는 고인돌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있다고 대답을 하였지만 조금 있다고 하셨다. 그런 것은 그냥 편의상 만든것이라고 하셨다.또 고인돌로 알수 있는것이 있는데 이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를 알수있다 그러셨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 진 것이니,그 때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고인돌은 이천에 없는것인 줄 알았지만 이천에도 고인돌이 있다는 것을 보니까 더욱더 신기해 보였다.
그 다음에는 백송(白松)을 보러갔다. 우리나라에는 백송이 총 8그루가 있는데 그 중 한 루가 이천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또 가지가 정교하게 이루어진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백송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독특하기 떄문이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예를들어 시계하면 스위스가 유명한데 일본이 전자 시계로 유명한 것을 낚아챘다가 스위스가 다시 손목시계로 다시 유명해졌다고는 한다.
그 다음에는 향교를 보러갔다. 그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중학교인데 그 뒤에는 사당이 있는데 사당은 종갓집 뒤에 있는 것 이다.
그다음은 1907년 최초로 이천에 세워진 고등학교를 보러 갔는데 양정여고라는 고등학교였다. 그런데 오래된 것 같이 보여야 할 것이 새것같이 보였다.
또 설봉산에 올라가 마애불을 보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깎여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는게 참으로 속상했다.하지만 목사님께서는 해가 뜰 때는 그 모습이 정교하게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다. 마애불을 보고 난 후 원래 우리는 도자기 축제 박물관에서 구경을 하러 갔는데 문이 닫혀있다는 말을 듣고 속이 많이 상했다.
그 다음은 서희 장군 동상을 보러갔는데 동상이 있는 곳은 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곳에 있는곳에 있었다. 서희 장군은 말 한 마디로 거란족 (요나라)를 물리친곳이다. 물리친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구려를 차지하기 위해 거란족의 대장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그때 소손녕이 협박을 하여 고구려인을 내쫓으려 하였다.신하들과 왕은 무서워 내려가자 하였지만 서희는 화가나 대군을 이끌고 공격을 하여 이기고 말았다. 그러나 서희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소손녕을 만나러 갔다. 소손녕은 서희에게 읍을 하라 명하였지만 "신하끼리 어떻게 읍을 하냐?"라고 말해 소손녕은 서희를 만나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서희는 숙소에 들어가 대(大)자 처럼 누어 결국에는 소손녕을 만났다."이 것 에서 나는 말한마디로 거란족을 물리친 서희장군이 우리 이천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도 책을 많이 읽어 서희 장군처럼 훌륭하게 말을 하여야 겠다.또 서희 장군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면 18살때 과거에 급제를 하였다는 것이다.나는 다시 한번 그말을 듣고 다시 한번 서희 장군이 자랑스러웠다.
그 다음에는 탑의 층수를 세는 방법을 배웠는데 처음 한층은 기초이고 그 다음 기와가 위로 휘어진 장소부터 층수를 세야 된다.그러니까 결국은 밑에서 부터 층수를 세면 안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곳은 어재연 생가이다. 그 곳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통 옛날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창고로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이 그냥 이어 사는 것 이였다. 어재연 생가는 낡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알게되었다.
나는 이천에도 이렇게 많은 보물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너무나 신기했다.아마 우리 이천 위인들이 가장 똑똑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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