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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고적답사를 다녀와서... |
조회수 : 1692 |
작성자 : 최가람 |
작성일 : 2003-07-28 |
첫날
밤12시에 목사님의 연설을 듣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또래인 차한, 민철이, 재현이,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지역에 왔다.
교회 친구들은 그 지역에서 난 자장면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근데, 다른 친구들은 내 것을 먹어 보았는데, 맛있다고 한다. 첫날부터 난 식욕이 없었다. 자장면을 대충 먹고 다시 차에 올라 탔다.
어느새 조계산에 갔다. 조계산은 우리민족이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졌을때 사람들을 대량학살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말고 살리는 역활을 해야 한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조계산을 올라가다 보니 부도밭이 나왔다. 내가 보기에는 밭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부도탑이 많아, 밭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도탑이라고 한다. 부도탑 밑에는 "사리"라는 것이 묻혀저 있는데, 이것은 스님을 화장하면 나왔다고 한다. 특히 부처(석가)의 사리는 많이 나와서 여러나라가 갖고 있다고 한다. 이 석가의 사리는 우리나라에도 있다고 한다. 왜 그런것이 나오는 것일까? 난 그것이 매우 궁금하다.
좀더 올라가 보니, 송광사가 나왔다. 송광사안에 두 건물이 있었는데 그 건물은 많은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시 옛 우리나라의 건축기술은 대단하다.또 어느 건물 안을 보았더니 불상이 약 천개 정도가 있었다. 왜 이렇게 불상을 많이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불교의 3대 보물 이야기도 하셨는데, 하나는 석가모니의 사리, 두번째는 팔만대장경, 새번째는 송광사의 유명한 고승들이라고 한다.
다시 차에 탔다. 차 안은 꽤 더웠다.....
야 다왔어!라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고인돌공원 이었다. 공원치고 무덤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인돌은 무덤인데, 남쪽지방식 고인돌과 북쪽지방식 고인돌이 있다. 남쪽지방식 고인돌은 시체를 땅 속에 뭍고 넓쩍한 바위를 그 위에 올려 놓으면 끝인것도 있고, 시체를 땅 속에 뭍은 다음 여러가지 작은 돌들을 그 위에 놓고 또 그 위에 큰 바위를 올려놓는 방식도 있다. 그런데, 북쪽지방식 고인돌은 시체를 땅속에 묻고 작은 바위2개를 그 위에 세워놓은 다음 큰 바위를 또 그 위에 올려놓는 방식이다.
유적지를 다 둘러본다음 목사님이 사진을 고인돌 위에서 찍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남쪽지방식 넓쩍한 고인돌을 택했다. 그리고 멋진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낙안읍성으로 갔다.
낙안읍성을 쌓은 장군은 입경업 장군이었는데, 당시 임경업 장군은 백성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장군이었나 보다. 왜냐하면 낙안읍성을 임경업 장군이 하루만에 다 쌓았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설마 하루만에 그 큰 읍성을 다 쌓을리는 없겠지만 백성들은 임경업 장군이 좋아서 그렇게 소문을 낸 것이다. 나도 임경업 장군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럴려면은 덕을 많이 쌓아야 한다.
이제 밥먹을 시간이다. 역시 또 밥맛이 없었다. 더 식욕을 없에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물통속에 들어간 모기였다. 그래서 밥도 맛 없게 먹고 잠시 쉬는 시간때에 나가서 물놀이 하면서 놀았다.
그 다음은 왜성을 갔다 왜(일본)이 쌓은 성이라고 해서 왜성이라고 한다. 이 왜성은 이순신 장군이 계속 승리를 하자 일본사람들이 무서워서 이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북선도 타 보았는데, 군사들이 불쌍했다. 이런곳에서 잠을 자다니...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좋은 일인것 같다.
둘째날
아침일찍 일어나, 상족암으로 갔다. 비가 조금 내려서 차 안에 많이 있었다. 그 곳에는 초등학교도 있었다.
우선 아침밥 부터 먹었는데, 특히 빵이 맛있었다. 이제는 공룡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가다가 땅을 내려다 보았더니, 벌레가 득실득실 하였다. 굵은지네에 쥐며느리를 합한 듯한 모양이었다.
드디어 공룡발자국이 있는곳에 도착했다. 내 발보다 큰 것도 있었고 작은것도 있었다. 그런데, 공룡은 그만한 발로 그 큰 몸집을 이르키고 다니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하다.
사진을 찍고 좀더 옆 쪽으로 가보니, 동굴이 있었다. 굉장히 짫은 동굴이 었다. 동굴 반대편 쪽에는 별로 볼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배를 타고 한산도로 난 실려가고 있었다. 이 한산도에는 이순신장군님이 계섰다고 한다.
이순신은 왜적이 우리 나라로 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조정에서는 빨리 일본으로 쳐들어 가라고 하고 있었다. 결국 이순신장군이 계속 쳐들어 가지 않자, 이순신장군의 관직을 빼앗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장군이 새로 그 한산도를 지켰는데, 계속 패배를 하자 조정에서는 빨리 이순신장군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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