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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동해안 역사 기행문..김상진 조회수 : 1548
  작성자 : 김상진 작성일 : 2004-07-11
이번 역사기행은 정말 못갈 뻔 했다. 왜냐하면 학교 기말고사
날짜와 겹쳐서 역사기행을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역사를 너무 좋아한다고 졸라서 가기로 결정 되었다.

이른 새벽2시에 출발해서 무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로 와서
역사기행을 갔다. 그래서 우리는 동이틀 부렵에 선돌에서 사진을
1장찍고, 봉래산에 갔다. 봉래산의 특징은 동강의 생태계가 많이
살고, 단종과 관련있는 유적지가 많이 있다. 그리고 성삼문이 지은
시도 있는데 그 시는 "이 몸이 죽어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 제일
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 청청 하리다."라고 지었다.
그리고 낙화암에 갔는데 거기는 단종의 궁녀들이 단종을 위해 강에 몸을 던진 곳이다.
그리고 관풍헌에 갔다. 관풍헌은 장원급제를 보는 곳인데 그곳에서
김삿갓 혼자서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리고 김삿갓에 별명은 방랑
시인이었다. 목사님이 관풍헌에서 문제를 내셨는데 나는 책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을 읽어서 방랑시인인줄 알고, 김삿갓의 별명이
방랑시인이라고 하였는데 맞추어서 목사님이 전체에게 내신 문제중에 이번이 처음으로 맞추어 기분이 좋아했다.
그 다음에는 장릉에 갔었는데 장릉은 단종이 세조에게 유배를 당하다 죽임을 당해 그의 시체가 있는 곳이다.
단종이 유배당할 때부터 단종은 노산군이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모두가 단종의 시체를 안가져 가려고 했는데 왕방연은 영월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묻고 노산군 묘라고 지엇다.
하지만 숙종때 노산군이 왕이 되서 장릉이라고 지었다. 특이하게도 임금의 묘는 한양에서 100리 안에 있지만 장릉은 100리 밖에 있다. 노산군에게 힘이없었던 까닭은 육체적인 힘, 지적인 힘, 영적인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단종의 묘를 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저에게 육체적인 힘과 지적인 힘, 영적인 힘을 주세요.
그래서 휼륭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이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나서 홍삼문, 창영포, 석탄박물관, 미인폭포, 죽서루에 가서 목사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숙소에 가서 일기를 쓰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얘기도 하면서 첫날밤을 잤다.

둘째날..7월6일 화요일
아침 7시에 출발을 해서 피곤하기도 하고, 조금만 더 자고 싶기도 하였다. 하지만 기왕 빨리 숙소에서 자고 싶으면, 일찍 일어나서 가는게 좋아서 빨리 일어났다.
먼저 추암에서 사진을 찍고, 촛대 바위를 보았다. 촛대바위는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다 깎여 나갔다. 그 다음에는 해암장에
가서 사진 1장 찍고, 정동진 마을로 갔다.
정동진 마을은 공원과 모래시계, 해돋이로 유명하다. 그리고 정동쪽 해돋이 마을이다.
그리고 강릉 객사문을 보고, 경포호로 갔다. 경포호는 어떤 부자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 아내와 자식 모두를 잃어 경포호 라고 한다고 들었다.
그 다음에는 강문동 진또배기, 경포대, 오죽헌, 선교장, 김동명 시비에 갔다.
그 중에서 경포대의 밤에는 달이 5개 뜬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늘에 뜬 달, 호수에 뜬 달, 바다에 뜬 달, 술잔에 뜬 달, 친구 눈에 뜬 달 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낙산 해수욕장에 갔는데, 파도가 너무 심해서 파도를 피하는 놀이만 하고 수영은 엄청 하고 싶었지만, 파도 구경만
했다. 그래도 해수욕장은 정말 재미있었다.

셋째날..7월7일 수요일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다하고 청간정에 갔다. 청간정이라고 쓴 글씨는 이 승만 대통령이 쓴 한자이지만, 6.25 이후로 없어지자 다시 쓴 글이라고 한다.
그리고 낙산의 의상대에 갔다. 그곳에서 목사님이 안동팔경은 8개가 있는데, 그것은 울진의 월송정.망알정, 삼척의 죽서루, 강릉의
경포대, 낙산의 의상대, 고생의 청간정,북한의 총석정과 삼일포
이라고 했다.
그 다음에는 설악산에 갔다. 설악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갔는데, 도중에 눈이 많이 내리거나 강풍이 일어나서 케이블카가 멈출것 같아 많이 걱정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기도했더니 무사히
왔다/갔다 했다. 역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신다.
앞으로 하나님이 소원 같은 것을 안 들어 주셨다고, 의심하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역사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마중을 안 나올까 봐 걱정되고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집에가서 혼날까 봐
걱정을 엄청 했는데, 내 가방을 민혁이 형이 찾아주어 혼나지
않았다.
다음 역사 기행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 해야겠다. 그리고 역사기행으로 시험도 못 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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