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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역사 기행문 (정섭) |
조회수 : 1789 |
작성자 : 신정섭 |
작성일 : 2005-01-14 |
<첫째날>
교회에서 강화도로 역사기행을 갔다. 처음 간곳은 행주산성 이다. 산성을 3가지로 나누면 산성, 읍성, 도성 이다. 산성은 산에 지은 성이고, 읍성은 마을에 지은 성이고, 도성은 도시에 지은 성이다.
행주산성에는 행주대첩 이란 큰 싸움이 일본과 벌여졌었다. 행주대첩때 여자들은 돌을 날라 싸움을 하였다. 행주치마는 이것에서 비롯되었다. 사람들은 권률장군을 높은 지휘를 받게 했지만 권률장군은 사향하였다. 권률장군은 나라를 지키는데 많은 이로운을 받고 55살때 신의주 목사가 되어 일을 하였다. 그 다음 한강에 가서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한강이나 임진강의 물은 모래에 석여 있다고 하셨다. 난 신기하였다. 그 다음 덕포진으로 갔다. 덕포진은 작전을 짤때 중요한 곳 이었다. 덕포진에서는 포격전이 많이 일어나서 힘들었다. 그 다음 손돌의 묘에서 설명을 들었다. 손돌의 묘에서 목사님께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손돌은 고려시대의 뱃사공이 었다. 몽고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손돌은 왕과 피난을 갔다. 그런데 이상한데로 가서 왕이 자기를 팔러 간다고 착각해서 왕이 칼로 머리를 치려고 하는데 손돌이 바가지를 바다로 던지면서 바가지를 따라가라고 하고 죽었다. 그 다음 덕포진 교육 박물관에 갔다. 교육 박물관에는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배우신 교과서들이 있었고 호랑이 십자수,잠완경 등등이 있었다. 정말 멋진 곳 이었다. 그 다음 덕진진에 갔다. 덕진진에는 신미양요란 큰싸움이 일어 났던 곳 이다.
<대원군 척화비문>
양의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뜻: 서양오랑케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 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 이다.
계오만년자손 병인작신미립
뜻: 우리들의 만대자손에게 경계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 에 세우다.
이것이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문이다. 그다음 용두돈대에 갔다. 용두돈대는 용머리 처럼 만들어서 방어를 하였다. 몽골이 쳐들어오려고 하는데 무서워서 못쳐 들어왔다.
<둘째날>
맛난 음식을 먹고 마니산을 올라갔다. 마니산은 해발469m이고 계단이 918계단이나 되었다. 올라갈때는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석주라는 아이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울었다. 나도 조금 무서웠다. 올라가니 너무나도 신이 났다. 난 산 올라가기가 제일 싫다. 하지만 올라가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그 다음 이규보 선생님의 묘에 갔다. 이규보 선생님은 팔만대장경을 썼다. 나도 이규보 선생님처럼 유명한 사람이 될것이다. 선원사지에 갔다.선원사지에서 팔만대장경을 썼다. 선원사지에는 목탁소리를 내는 소가 있는데 정말 신기하였다. 그다음 갑곶돈대에 갔다. 갑곶돈대에는 훌륭한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있었다. 옛날 자료도 있었다.
<세째날>
세째날처음에 분오리 돈대에 갔다. 분오리 돈대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 방어를 하였다. 분오리 돈대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 정말 멋졌다. 해돋이를 보고 강화 오상 고인돌군에 갔다. 고인돌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1. 북방식 고인돌
2. 난방식 고인돌
3. 개석식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은 돌 4개를 가로 세로로 붙여서 세우고 큰돌 하나를 위에 올려 놓는다. 난방식 고인돌은 돌을 세로로 세우고 가운데에 작은돌로 받침을 하고 큰돌을 그위에 올려 놓는다. 그 다음 자유의 다리에 갔다. 자유의 다리는 전쟁이 일어났을때 북한포로는 우리나라에 있었고 우리나라 포로는 북한에 있어서 북한과 한국이 포로를 거례할 때 자유의 다리에서 거례를 하였다. 황이정승은 청백리의 후륭한 분이 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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