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역사기행 기행문 |
조회수 : 1697 |
작성자 : 이규호 |
작성일 : 2005-01-16 |
전에 역사기행 출발은 새벽2시에 가던것을 오늘은 새벽7시에 출발했다. 조금은 여유가 있는듯했다.
역사기행 목적지는 강화도 였다.
9시쯤에 행주산성에 도착했다. 그곳은 행주대첩에서 권률장군이 크게 승리한 곳이다.산성은 산에서 왜군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 성이다 도성은 도시를 둘러싼성이고 읍성은 마을을 둘러싼 성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때 권율 장군은 장군이 돼어 행주대첩에서 크게 이겼다. 그당시에는 우리 나라에는 무기가 부족해서 여자들이 돌을 날르고 남자들이 앞에서 싸웠다.
그 덕분에 우리가 크게 이길수 있었다.권율은 크게 이기고 나라를 지켜서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권율 장군 비와 동상이 있다.
우리는 덕포진으로 차를타고 갔다. 덕포진은 서울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면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다 트인다.
신미양요(1872년)때 미곳에서 큰 포 싸움이 있었던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이 전략을 꾸미기 위한 좋은 장소라해서 전략적 요충지 라고 말하였다.
한양이 일본군에게 함락되고 고종이 덕포진으로 쫒겨 왔다.
그때에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을 갈때 손돌이 강화도로 똑바로 안가고 다른길로 가는 것이었다.그래서 손돌의 목을 고종이 잘랐다.
그러나 손돌은 죽기전 왕이 탄 배는 이 바가지를 따라 가십시요.
이렇게 말하고서 바가지를 던지고 죽었다.
앞은 물살이 너무세서 바가지를 따라갔다.그렇게해서 강화도에 무사히 돌아갈수있었다.10월달 마다 큰바람이 부는데 사람들은 그 바람을 손돌의 바람이라 부른다.우린 덕포진 교육박물관에 갔다그곳에는 옛날에 흔하던 것이 요즘은 보기 드물어 귀하게 된것을 전시해놓은 곳이다.
그 안에는 훈장님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인형으로만들어 놓은 것도있다.
그리고 그안에는 옛교과서와 한자서적이 있다.
그곳엔 옛날의 교실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것도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옛날학생들이 된것처럼 책을 보자기에 넣은것을 메어보기도 하고 공부도 조금 해보았다 학교종을 두번치면 공부가 끝난다고 해서 두번치고 공부가 끝났다.
우린 다보고 올라와 초지진으로 갔다.초지진은 안이 둥글고 그안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안을 둘러보고 나왔다. 고려에서는 송악에서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그때에 강화도 앞 바다가 물살이 세서 외국이 쳐들어 오지 못하였다.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가 쳐들어 왔다. 프랑스 함대는 무장을 하고와 무역을 하자해서 우리나라가 포로쏴 서 침몰시켰다.무려 40년 동안이나 강화도에 있었다.우리나라는 대원군척화비문 때문에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래서 우리 나라는 무기가 부족해 병인양요 신미양요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원군은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 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이라는 비를세웠다.
사람은 힘을 세가지를 가져야 한다.1육체적인 힘
2지적인힘 3영적인힘
우리는 덕진진으로 가서 신미양요 가 무었인지 알았다.
신미양요는 미국이 쳐들어온 것이다.우리는 더올라가 <덕진돈대> 라는 곳이 군인이 적을 막던 곳이다.
신미양요때 (제너럴 시어먼)이라는 미국 배가 왔는데우리가 포로 침몰시켜서 죽이고 그안에있던 토머스 목사님이 순교를 당하고 성경책을 나둬서 우리나라가 기독교가 생겼다.
우리는 용주돈대로 갔다. 용주돈대는 용머리 같은 곳에다가 돈대를 지었다고 해서 용주돈대다. 우리는 외규장각에 갔다.외규장각에 있던 유명한 책을 프랑스가 훔쳐가서 프랑스 박물관에 책이있다. 우리는 다듣고 전등사로 갔다 전등사는 고구려시대때 불교를 처음 전한 스님이 세운 절이었다.
설명을 듣고 밥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도 잘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이다.6시 30분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마니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참성단 까지 올라가야했다.
그 계단은 무려 918계단이나 되었다.
그곳이 아주 높지 않게 지도에서 나와서 쉽게 갈것같았는데
막상 올라가 보니까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돌계단 이니까 아주 크고 넓어서 힘이 많이 소모 되었다 그래서 조금가다 쉬고 조금가다 쉬고 이렇게 반복을 해야했다.
참성단까지 올라갔더니 문이 잠겨있었다 그래서 반대편 봉우리로 가서 보아야 했다.
사진 몇번 찍고 설명 듣고 다시 내려갔다.우리는 차를 타고 이규보 선생님의 묘로 갔다.이규보 선생님은 고려시대의 문신이다.
이규보 선생님은 글을 잘쓰시던 문신이었다.
팔만대장경의 기원문도 이규보 선생님이 쓰셨다.
외국과 관겨를 할때 외교문서을 보낼때 이규보 선생님이 쓰셨다.
우리는 왜이런 곳에 왔냐하면 보러만 온게 아니라 우리가 그 역사에 계신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 한다고 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