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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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강화역사 기행]} 조회수 : 1740
  작성자 : 구경희 작성일 : 2005-01-20
[강화역사 기행문]


역사기행을 가기 전에 나는 무척 들뜬 마음이 었다.
7:00시 나와 친구들(언니, 오빠들)은 교회차에 타면서 강화도까지 갔다. 첫째날 처음으로 간 곳은 행주산성이었다.
행주산성에는 권률장군의 동상이 있었다.
권률장군께서는 행주대첩때 큰 승리를 거둔 장군이다.
행주대첩은 왜 행주대첩이냐 하면 그때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만들어서 그 안에 돌멩이를 넣어 남자들에게 주면 그것을 왜군들에게 던져 큰 승리를 얻어서이다.
나가 매일 던지고 놀던 돌이 그렇게 휼륭한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또 권률장군에 대해여 알게 되어서 좋았다.
성 종류가 여러 가지 있다고 한다.
산에 쌓으면 산성. 읍이나 조그만 마을에 쌓으면 읍성, 도시에 쌓으면 도성이라고 하였다.
나는 성의 종류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다음에는 행주대첩비가 있는 곳에 갔다.
행주대첩비는 왕이 권률장군에게 내린 대첩비라고 한다.
왕이 권귤장군에게 대첩비를 내린 까닭은 권률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찔러서 세워졌다고 한다.
덕포진은 염하라는 바다를 끼고 있다.
그리고 강화도의 주위에는 천연요새(돈대)가 있었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가 있는데, 병인양요는 1866년도에 프랑스인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싸웠고, 신미양요는 1871년도에는 미국이 쳐들어 왔었다고 한다.
덕포진에서 손돌의 묘를 보았는데 묘가 좀 컸다.
옛날에 고종과 손돌이 배를 탔을때, 손돌이 염하 중간쯤에서 배를 갑자기 돌렸다. 고종은 손돌이 자신을 일본에 넘기는 줄 알고 손돌을 계속 의심하여 고종은 손돌을 가을(10월)에 손돌을 죽였다.
손돌을 죽이기 전에 손돌은 염하에 바가지를 던져 고종에게 이 바가지가 있는 곳을 따라가라고 했다.
그래서 고종은 손돌을 죽인 후에야 후회하고 손돌을 강화도에 고이 묻어 주었다고 한다.
그 뒤 가을이 되면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데 그 바람의 이름을 손돌바람이라고한다.
초지진에는 부근리 고인돌과 고인돌 공동묘지들이 많았다.
초지진에서 왕들이 39년 동안 머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팔만대장경과 금속활자도 강화도에서 만들었다.
운양호라는 일본배가 들어와서 초지진에서 큰 싸움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3가지 힘을 길러야 한다.
1. 육체의 힘을 기른다.
2. 지적인 힘을 기른다.
3. 영적인 힘을 기른다.
이 3가지의 힘을 기르려면 아주 오랜시간이 걸릴것 같다.
하지만 이 3가지의 힘을 길러야 우리나라가 강해지기 때문에 3가지힘들을 모두 기를 것이다.
광성보에는 쌍충비가 세워져있는데 그것은 어재연장군과 동생 어재순의 비석이다.
어재연장군과 어재순장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오자 어재연장군과 어재순장군 또 200명의 군사들과 함께차라리 죽겠다고 하였다.
그 전쟁때 진짜로 한명도 빠짐없이 죽어버렸다고 한다.
신미순의총은 전쟁때 불로 인하여 화상을 입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한 구, 한 구씩 떼어 내기 힘들어 71개의 시신을 한꺼번에 묻어 5개의 묘를 만들어놓았다.
직접 5개의 무덤을 보았는데, 내가 직접 그 시신을 보고 싶었다.
용두돈대는 끝이 용의 머리모양 같다고 하여 용두돈대라고 이름이 붙어졌다.
이 돈대는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돈대라고한다.
몽골인들은 물을 무서워 한다고 한다.
그래서 몽골인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청나라 군대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와서 우리나라가 망했다.
금속활자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기는 했지만, 실용화되지 못해서 알려지지 못했다.
금속활자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진 사람은 쿠텐베르크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거짓!! 우리나라가 먼저 만들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강화역사방물관에서 토기장군, 백자제기, 청동보살좌상, 강화동종, 인조대왕실록, 창, 조총등의 문화재를 보았다.
조총과 창은 엄청 멋있었다.
그리고 옛날에 입었던 옷도 보았는데 현재 옷과는 무척 달랐다.
산원사지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여기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든곳이다.
팔만대장경은 2번째로 만들어졌다.
2번째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의 이름은 제조팔만대장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팔만대장경판이 국보32호로 지정되어있다.
이규보선생님께서는 글을 잘 쓰셔서 팔만대장경에 대하여 글을 쓰셨다.
둘째날에는 7:00쯤에 마니산에 올랐다.
마니산에는 918개의 계단이 있었다.
내가 918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힘을 내서 계단을 모두 올라가 정상에 올라갔다.
마니산 정상에서 본 풍경은 정말 멋있었다.
분오리돈대에 갔는데, 분오리돈대는 안이 넓지 않았다.
북쪽에 있는 돈대들은 많은 전쟁을 겼었는데 분오리돈대에서는 전쟁이 나지 않았다고한다.분오리돈대에는 적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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