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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기행문 |
조회수 : 1699 |
작성자 : 김예린 |
작성일 : 2005-01-26 |
월요일
교회역사기행을 가기 위해 6시 쯤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처음으로 간곳은 행주산성 이다. 이성은 신라시대때 쌓아진 산성이다. 산에쌓으면 산성 작은마을에 쌓으면 읍성 도시에 쌓으면 도성이 된다. 목사님은 전전쟁이 날때 마다 영웅이 탄생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두번째로 간곳은 덕포진이다. 덕포진은다른 육지와 붙었다 띠었다 한다고 하셨다. 이곳에서 보이는 바다는 염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세번째로 간곳은 손돌의 묘이다. 이곳에서는 강화도가 보인다. 이곳에있는 바다를건너게 하는 뱃사공 이름은 손돌이다.몽골군이 강화도에 쳐들어 왔을때 고종(왕 이름)은 강화도에서 덕포진으로 건너올때 손돌이 배를저었는데 고종을 구하려고 배를 중간에서 멈추었다.(바람이 불어 바다물이 흔들려서)
고려 고종때 몽골이 나중에 명나라가 되었는데 그때 뱃사공인 손돌은 고종을 태우고 염하를 건너가고 있는데 염하의 중간쯤 다다랐을때 거센물살이 쳐서 다시 돌아가려는데 고종은 손돌이 자신을 죽이는줄로만 알고 손돌을 죽이려고 했는데손돌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살 수있을 거라고 했다.그런데 이 말을 믿지 못한 고종은 그만 손돌을 죽이고 말았다.하지만 물살이 더욱더 거세져서 손돌의 말을 믿고 바가지를 따라갔는데 살아서 손돌을 의심하고말아 죽인 고종은후회를하며 손돌의 묘를 지어주었다.네번째로 간곳은 강화도의 초지진이다. 강화도도는 슬픈일이을 만이 겪었다고 했다.초지진은 고려고종때 몽골이 쳐들어와서 왕도 39년 동안 강화도에 머물면서 임시수도를 세웠는데 그때 팔만대장경도 만들고 금속활자도 만들었다. 그이후 정묘 호란때 아우와 형 관계를 맺고 병자호란때 군신관계를 맺었다. 1875년때엔 일본 운양호와 싸워서 지고 조약을 맺었다.나는 이런 부끄러운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우리가 육채의 힘,지식의힘,영적인 힘을 길러서 우리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다섯번째로 간 곳은 덕진진이다. 이곳에서 볼때는 바다의 물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덕진돈대로도 가 봤었다 돈대라는 곳은 해안을 지키는 경비 초소 이다. 여섯번째로 간 곳은 경고비 이다. 여기로 오지 말라고 경고해 놓는 것이다. 새것을 받아들인다. (온고지신)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다음은 광성보를 갔는데 광성보 안엔 돈대가 있다.미군함 5척이 남양을 지배했다. 병인 양요때 제너를 셔먼호가대동강에 쳐 들어와서 장사를 하자고 했는데 원래는 하면 안되는 것인데 계속 하자고 해서 대포를 쐈는데, 그중 배를 타고있던 한 목사님이 대동강가에서 죽게 되어서 미국인이 말할때 한쪽은 목사님을 죽인 것을 책임지라고 하고 한쪽은 장사하자고 하는데 결국 미국인이 초지진과 덕진진, 관성돈대를 점령했다. 그리고 조금더 가면 쌍충비각이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비각은 어재연장군 왼쪽에 있는비각은 어재순장군의 비각이다. 이 장군들은 조선 말기의 유명한 인물이다. 아홉번째로 간 곳은 용두 돈대 이다. 머리가 용 처럼 생겨서 용두 돈대 이다. 강화도의 돈대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돈대 이다. 그다음으로 간 곳은 선원사지 이다. 원래이곳은 선원사라는 절이있었다. 근데 미군에의 해서 없어졌다. 이곳에서는 대장 도감이라는 책도만들었고 팔만대장경은 2번만들었다.마지막으로간곳은 이규보 선생님의묘이다. 글을 아주잘썼다 목사님이 나는 앞으로 커서무엇이 될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을때 난는 한의사 가 될것이고 병들고 아픈 사람을 치료 하고 낳으면 기분이 좋을것갔다
화요일
오늘 6시쯤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출발 했다.
처음으로간곳은 마니산이다. 469m, 계단:918개정도 된다. 정말 올라가는 것이 힘들고 괴로웠다. 마니산 정상에 오르면 참성단이 보다. 그곳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그 뒤에는 우물이 다.참성단은 마니산의 꼭대기에 있어서 등산을 하고 918개의 계단을 또 올라가야한다. 해발 496m의 마니산을 겨우 올라가서 본 참성단과 참성단을 쌓은 단군은 삼국유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나온다. 참성단의 바깥쪽 사각형은 땅을 상징하고 가운데의 원은 하늘을 상징한다. 근데 올라 가는 것 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 었다.다음 목적지는분오리 돈대이다. 강화도의 서해안을 지키는 부대이다. 강화도의 분오리 돈대는 큰전쟁을 많이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오상리 고인돌에 갔다. 맨위에 놓은 돌은 네가 지석묘이다. 개석식 고인돌과 남방식,북방식 고인돌이 있다. 하지만 개석식 고인돌은 찾기 어렵다. 개석식 고인돌은 꼭 그냔 바위갔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간곳은 강화 하점면 5층 석탑이다. 이 오층석탑은 강화도의 1개밖에 없는 5층 석탑이다. 그래서 강화도의 보물제10호로 지정되어있다. 마지막부분은 없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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