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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 종근이가 쓴 - 기행문 |
조회수 : 1546 |
작성자 : 서종근 |
작성일 : 2005-01-31 |
강화도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월요일 아침, 긴장되는 마음으로 일어나 씻고 옷을 입었다. 우선 나는 조유하네 차를 타고 행주산성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될까? 또 얼마나 재미있는 여행이 될까? 등등... 나는 이번여행이 벌써 4번째인데 그래도 많이 기대도되고 긴장도 된다.
행주산성에 도착하자 앞에 목사님 차가 보였다. 나는 행주산성 주차장에서 목사님과 만나서 인사를 나눈 뒤 간단히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본격적으로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이곳 행주산성은 대략 신라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성은 대게 산성과 읍성, 도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이곳은 산성이다. 또 이곳은 권율장군이 임진왜란때의 3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이기신 곳이기도하다. 임진왜란처럼 어려운 시대에는 이순신, 김시민, 권율 장군등 영웅들이 꼭 탄생한다. 우리도 이런 영웅들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여 주셨다.
다음 우리는 덕포진에 갔다. 이곳은 염하를 중심으로 있는 포대인데 적의 군함이 지나갈 때 이곳에서 포를 쏴서 적을 막아냈다고 한다. 다음 손돌의 묘에 갔다. 손돌은 몽고군이 쳐들어 왔을 때 고려의 고종이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 그때 고종을 모시던 뱃사공이 손돌이다. 손돌이 고종을 모시고 염하를 건너는데 점점 물살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돌은 돌아서 가야한다고 말했는데, 고종은 그 말이 자신을 몽고군에게 넘긴다는 말이라고 의심을 하였다. 그래서 손돌은 바가지를 던지고 이것을 따라가면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종은 말을 믿지 못하고 손돌을 죽여버렸다. 어찌할 바가 없던 고종은 그 바가지를 따라갔는데 안전하게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제서야 고종은 후회하며 손돌의 묘를 세웠다고 한다.
다음 우리는 초지진에 갔다. 이곳은 일본의 운양호가 쳐들어 왔을때 큰 접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때 우리나라가 지게 되었는데 일본은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게 되었다. 이곳 강화도는 들추면 들출수록 슬픈 기억이 많은 섬이다. 우리가 더 이상 이러한 역사를 만들지 않으려면 힘센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육체적인 힘과 지식의 힘, 영적인 힘을 길러야한다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우리는 덕진진에 갔다. 이곳은 미국이 쳐들어 왔을 때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그때 우리나라는 무기력하게 지고 말았다고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서양의 발단된 무기를 사용했지만 우리나라는 우리 것만 좋다고 하며 서양의 발달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님께서는 옛것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새롭고 좋은 지식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음 우리는 광성보에 갔다. 이곳은 신미양요때 접전이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다음은 쌍충비각에 갔다. 이곳에는 어제연 장군과 그의 동생인 어제순 장군의 비가 있는 곳이다. 또 이 밑에는 묘가 있는데 이곳에는 51명의 군사들이 묻여져 있다고 한다. 다음 우리는 용두돈대에 갔다. 이곳은 돈대모양이 용머리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앞의 바다는 아주 물이 거세서 적들이 쉽게 쳐들어 오지 못하였다고한다. 몽고가 물러가고 청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관리들은 청나라도 몽고처럼 이곳 강화도에는 못 쳐들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놀고있었는데 청나라는 몽고와는 달리 강화도에 뗏목을 타고 쳐들어와서 1일만에 강화도를 점령했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준비된 인생을 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다음 우리는 선원사지에 갔다. 이곳은 강화도로 수도를 천도한지 13년 뒤에 이곳에 선원사라는 절을 짓고 이곳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옛날에 아름다웠던 것보다 현재에 아름다운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마지막으로 이규보의 묘에 가서 목사님의 설명을 들은 후 숙소로 돌아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서 일기를 쓰고 잤다.
둘째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어제 친구들과 일기를 아주 아주 열심히 쓰고 슈퍼에서 사온 과자를 먹고 TV를 조금 본 뒤 씻고 늦게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우리는 6시 30분에 마당에서 모여 아침을 먹으로 차에 탔다. 우리는 카레이스를 맛있게 먹고 마니산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동생에게 매우 힘들다고 들어서 걱정이 되었다. 계단이 무려 918개나 된다고 하였다. 마니산 입구에 도착하자 목사님께서 물을 방당 1개씩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마니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 예상대로 초반부터 매우 힘들었다. 먼저 우리는 조금 오르다가 기도원 앞에서 조금 쉰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단이 점점 높이가 높아져서 매우 힘들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