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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새벽이의 답사기행문 |
조회수 : 1637 |
작성자 : 신새벽 |
작성일 : 2005-02-01 |
새벽이의 답사기행문
나는 답사기행을 2학년 여름방학때 가서 지금이 5번째 가는 것이다.(4-1학기때 못가서..)
어디를 갈까 궁금하고 기대했는데 강화도라고 해서 실망했다. 강화도에 가보지도 않았고,
자세히 알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화도는 내가 지금까지 갔던 곳 중에서 이천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아침7시에
출발해서 졸리지는 않았다.
첫 번째로 행주산성에 갔다. 그곳은 신라때 쌓은 성으로 추측된다.(행주는 당연히 지역이름이다.)
우리나라는위에는 대륙 옆에는 섬 이라서 섬사람들이 육지로 올라가는 길목이고 또 대륙 사람들이
섬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되는 땅이다. 그래서 전쟁이 많았다. 섬(일본)과 사웠던 전쟁인 임진왜란이 있다.
진주대첩(김시민 장군이 이긴 싸움),행주대첩(권율 장군이 이긴 싸움),한산도 대첩(이순신 장군이 이긴
싸움)이다. 행주산성에서는 행주대첩이 있었다.
권율은 선조때 영의정이었던 권철의 아들이다. 똑똑했지만 벼슬을 싫어해서 않하다가 55세에 처음 벼슬을
했다. 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다.
행주대첩은 후퇴하던 일본군과 싸운 싸움이다. 일본군은 대장 우끼다를 앞세워서 3만명이 처들어 왔다.
반면에 우리 군사들은 2300명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성 안의 여자들이 가져온 돌까지 던저가며
싸워서 이겼다. 그 때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해서 돌을 들고왔는데 그 돌을 들고 온 치마가 행주치마가 된 것이다.
강화도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왜냐하면 한강이 강화도까지 흘러오는데,이 강화도를 차지하면 한강을 따라 바로 서울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행주산성에는 병사들도 적고, 빼았기면 안되는 장소였는데 지도자 권율 덕분에 전쟁에 이길 수 있었다. 역시 지도자가 중요하다.
두 번째로 덕포진에 갔다. 강화와 김포 사이에는 염하라는 바다가 있다. 염하를 따라가면 서울이 나온다. 그래서 그 염하를 지나가는 외국 배들을 쏠려고 만든 돈대(해안 경비초소 같은 것.)가 많이 있다. 그곳은 다 천연의 요새이다. 그러나 신미양요,병인양요에서 계속 졌다. 흑흑...
세 번째로 손돌의 묘를 보았다. 고려 고종이 몽골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송악(개성)에서 염하를 건너 강화도로 피난가는 왕이 탄 배의 뱃사공이 손돌이었다. 몽골군은 말은 아주 잘 타지만 물은 무서워해서 못건너오고 있었다. 염하는 물살이 세서 손돌이 배를 멈추었다. 의심 많은 고종은 손돌이 몽골의 첩자라고 생각하고 손돌을 죽이려고 했다. 손돌은 죽기전에 바가지를 던지면서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살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종은 결국 손돌을 죽였다. 고종은 손돌의 말을 믿지 않고 가다가 배가 뒤집힐 번 해서 바가지를 따라갔더니 살 수 있었다. 고종은 손돌을 죽인 것을 후회하고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 때가 10월이고 지금도 10월이 되면 강한 바람이 부는데 그것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사람은 의심도 많고 거짓말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시지 않으니까 하니님을 잘 맏어야지!
네 번째는 덕진진에 갔다.이곳에는 미군이 전쟁에서 이겨서 성조기를 꽂으며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 덕진진은 좋은 위치에 있지만 무기와 물자가 부실해서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덕진진 속에는 덕진돈대도 있었다. 강화도에는 약53개의 돈대가 있다. 또 경고비도 있다.이것은 대원군이 세운 것으로 비문은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만년 자손병인작 신미립"이라고 써있다. 일본은 전쟁에서 우리나라를 이겼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같은 쇄국 정책이 아니라 온고지신(자기것은 지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믿음의 경고비를 세워서 좋은 것만 받아들일 것이다.
다음은 광성돈대에 갔다. 그곳에서 소포,불랑기,홍이포라는 세가지 대포를 보았다. 이 돈대는 1871년 신미양요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너럴 셔먼이란 배를 침몰시켜서 미국에서 5척의 배가 왔다. 그 배들중에 몇척이 올라가면서 덕진진,광성보,초지진을 모두 전멸 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think tank"를 꼭 채워야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훌륭한 강대국으로 만들어야 겠다.
다음은 쌍충비각을 보러갔다. 그것은 어제연,어제순(형제)장군의 비석이다. 그 사람들은 조선 말 사람이다. 신미양요때 자신의 군사들과 죽을때까지 싸우다가 한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죽는다. 쌍충비각은 이 두 장군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다. 오른쪽 비석은 어제연 장군,왼쪽 비석은 어제순 장군의 비석이다. 그 밑쪽에는 신미순의총이 있다.이 무덤은 71명의 조선군대가 불 때문에 시신이 서로 엉겨붙어서 7개로 나눈 무덤이다.
용머리 처럼 생긴 용두돈대도 보았다.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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