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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길선주의 부흥회 조회수 : 2704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조선 교회의 부흥회는 길선주의 제1기와 김익두의 제2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길선주의 부흥회 /

길선주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9년 평양 대 부흥회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라의 역사가 잠시 끊어진 상태에서 압제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신앙적 대망을 심어준 것이 길선주의 부흥회였다. 그는 평양 대부흥회의 실제적인 인도자로서
독특한 신앙을 형성해 나간 인물이었으며 또한 역사상 최초로 새벽기도 운동을 일으켜 새벽기도 운동의 전형이 되게 하였으며, 통성기도라는 독특한 기도의 형태를 창안하므로 소리 내서 기도하는 의식을 시작하게 했으며, 성령의 임재에 대한 체험적 고백이나 그 정서적 표현이 경건하게 감사는 신앙생활이 사실상 이 때로부터 그 뿌리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부흥회는 성경을 구슬처럼 꿰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엄청난 성경독서량에 기인한 것이다. 그는 요한계시록은 1만2천회 독파하였고, 신구약 성경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읽어서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그의 설교가 넘치는 영력과 함께 성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은 여기에 기인한 것이다. 더구나 그의 부흥회는 35년간 삼천리 반도와 남북만주를 포함하여 20만리를 망라하였다.

그의 힘든 부흥회 여정에 마지막 안식이 찾아온 것은 1935년 11월26일이었다. 평서노회 사경회가 강서군 고창의 이향리 교회에서 열렸을 때 거기서 설교하다가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예수가 거느리시니” 이것이 그가 이 땅에서 마지막 부른 찬송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평양 노회장으로 거행되었다.

길선주의 사상은 종말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근거는 계시록과 요헌서신이었으며, 요한의 신비주의가 그 신앙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소망의 소재를 먼 미래에 두고 “주 예수의 강림이 불원하니”라는 찬송가가 영가처럼 울려 퍼지는 그의 독특한 신앙 부흥회는 성령의 내재를 기대하는 이 시대의 갈망에 응답하여 맡은 바 소임을 훌륭히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부흥회에 부정적인 요소가 없지 않았으나, 하늘나라의 소망을 이 땅에 실현시키려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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