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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고대 이집트인들의 죽음과 미라만들기 조회수 : 3759
  작성자 : 박행신 작성일 : 2010-07-02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미라에 대해서 배워볼까요?
그러나 이집트인들에게 미라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고 삶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을 미라로 만들기도 했어요. 사후세계에서도 함께 지내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지요. 대영박물관에 가면 애완동물이나 신성시하던 동물의 미라를 많이 볼수 있지요. 내년(2010년) 여름방학 때 목사님을 따라서 가보지 않을래요?


이집트인들은 모든 시간과 방법을 동원해서 시신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는데 신경을 썼는데, 사후세계에서 영혼이 자기 몸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했지요. 그래서 시신은 가능한 찾기 쉽게 원래의 모습대로 보전했어요.


람세스 2세의 미라


미이라로 만들기 위해서 먼저 콧구멍으로 뇌를 조금씩 꺼낸 뒤 다 꺼내고 나면, 옆구리를 조금 절개해서 위 허파 간을 비롯한 내장을 들어냈어요. 각각의 내장은 특별히 제작된 카노푸스단지에 보관되는데, 이것들은 미이라 근처에 두었지요. 영혼이 자기의 것을 쉽게 찾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랍니다. 카노푸스는 호루스의 네 아들을 형상화한 것이예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미이라를 만든 것은 아니었지요. 차를 사려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차의 종류와 색깔을 결정하듯이,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의 가족들이 미이라의 처리 방법을 선택했어요. 이때 가난한 사람들은 미이라를 만드는 세세한 방법까지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고, 부자들만 미이라는 잘 처리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답니다. 부자들은 애완동물까지 미라로 만들었어요. 어찌되었든 이집트에는 미이라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파라오는 세상을 떠난 후 40일 동안 계속되는 엄격한 과정을 거쳐 미이라로 만들어진답니다. 시신에 기름을 바를 때도 가장 귀한 것을 발랐지요. 지금의 레바논지역에서 들여온 송진과 곱향나무를 들여왔으며, 유향과 몰약은 지금의 소말리야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사왔구요. 계피와 밀랍 또한 시신의 냄새를 제거하고 시신을 봉할 때 사용되었어요. 시신의 모든 준비를 미치면 아마포를 가지고 시신의 손가락과 발가락 까지 조심스럽게 감았답니다.

신왕국시대에서 이상적인 미이라를 만드는 방식을 찾는 일은 계속되었는데, 영혼이 자신의 미이라를 찾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미이라를 만드는 것을 중요했던 것이지요. 람세스 2세의 경우를 보면 그의 커다란 매부리코를 보존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였는데, 1977년 엑스선 촬영기술을 동원하여 찍은 사진에 의하면 람세스 2세의 특이한 코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하여 콧구멍에 수십개의 후추열매를 집어넣었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신왕조시대에는 눈꺼풀이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앙파껍질을 이용하기도 했고, 돌이나 톱밥을 이용하여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똑같은 눈알과 다른 부분을 만들어냈답니다. 당시 시신을 미이라로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지만, 시신에 붕대를 감는 일은 <아누비스신>의 마스크를 쓴 성직자들이 담당했다고 하네요.


아누비스신의 마스크를 쓴 성직자가 시신에 아마포 붕대를 감는 벽화


파라오의 시신을 미이라로 만드는 일이 끝나면 자신의 얼굴을 닮은 장례용 가면을 쓴 후 관에 담겨졌어요. 가장 유명한 장례용 가면은 신왕국 시대 18세의 어린나이로 생을 마감한 투탕카문의 황금가면인데, 이집트에 있는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에 가면 이 아름다운 가면을 볼 수 있어요. 목사님이 본 가면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네요.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꼭 가서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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