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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지언이기행문 조회수 : 2401
  작성자 : 김지언 작성일 : 2005-02-27
8시에 현대교회에 갔다.. 그런데 지원이가 없었다.. 실망했다
기다리니 다 왔다..지원이를 만나 너무 기뻣다.
남한산성에 도착하였따.남한산성은 조선 인조때쌓은것이다. 신라 문무왕이 그전에 토성을 쌓았는데. 인조가 다시 돌로 쌓았다.
이곳은 동문이다. 좌익문:왼쪽의날개??라는 뜻.자.. 식량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시구문이라는 마차전용문이 있다, 물전용
수문도 있다.지수당이다,. 발이시려웠다. 지원이가 옆에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았다.지수당연못이 있는데. 네모낳고 동그랗다. 네모는 땅을 뜻하고 동그란것은 하늘을 뜻한다,. 그런데 꽁꽁얼어있어서 신윤철이 눈덩이를 던져 막깨보려구 했다.헛수고였다. 이곳 지수당에서는 잔치를벌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남한산성역사관,
여기서 패물,옥등이 있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따. 남한산성의 구조.
본성,외성,신남성,성곽의내부. 이 성의 요소 : 치성,웅성,총안,암문,여장 ... 헌절사에 왔다.헌절사는 사당인데홍익한 윤집 오달채를 존경하고 모시는 사당이다. 1627년 정묘호란?? 이 일어났다.
그떄 금나라가 우리보고 친구하자고 막 협박했다. 그때 우리는 다른나라와 팅구하구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그렇지만 우리는 져서
친구관계를 맺었다. 십년이 흐르고1638년 병자호란. 청나라 무지하게커짐. 우리에게 군신관계를 맺자고 함. 그때.주화파 척화파로 나눴다. 주화파는 항복하자(최명길주장)였고 척화파는 (김상헌주장) 싸우자 였다. 임금님은 항복하자편에 들었고, 결국은 인조는 이마가깨져 피가흐르도록 절을하는 수치를 맞아야했따. 열심히 군사력을키우고 땅을 넓히면 우리가 이겨 미래가 바꿜텐데..나중에 목사님꼐서 말씀하신건데 둘다 나라를 위해 힘쓴분이라 한다. 항복은 백성을 지키기떄문이다. 오달채,윤집,김상헌등은 절을안하고 버티었다,
그다음은 수어장대, 장대는 대장께서 지휘하던 곳이었다.남한산성에는 장대가 4대나 있었다.여기선 임금님이 직접 지휘를 했다.여기는 이층으로 되있는 집이고 처마는 겹처마로 만들어져 있다.ㅋㅋ 사모님에게 가서 들어보니 임금님이 지휘해서 용머리가 붙어있다고 하였다. 청량사 사당. 이곳은 이회가지은곳이다. 이회는 남들보다 사당을 꼼꼼히 쌓느라고 늦게쌓다. 그레서 간신들이 다 모함을 하여 이회는 사형에 쳐하였다. 나중에보니 어느것보다 꼼꼼하여서 사당에 이회를 기르렀다. 교수현에 쳐하기전 이회가 제가 죄가있으면 매가 안날라올것이고 죄가없다면 매가 날라올것이라고 했다. 매는 날라와 바위에 앉았고 그바위는 매바위라 한다,.침괘정은 무기를 만드는 곳이라한다., 뜻:창을 배게로 쉬는곳. 그다음 영월정 그곳은
달맞이를 하는곳이라 한다 영월정에서보는 달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
이다. 그래서 이름도 영월정이구... 휴... 기념사진을 찍고
숭렬전으로 갔다. 이곳은 온조와 이식이 있는곳이다. 온조가 정조?의 꿈에나타나 심심해서 사람한명만 보내달라 하였따. 그래서 정조는 장렬히싸우다 죽은 이식을 기억하고 이식을 보냈다.
동문:좌익문 서문:우익문 남문:지화문 북문:전승문
미끄럽다. 마지막? 으로 연무관에 갔다. 이곳은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과거로 2로크게나뉘는데 문,무가 있다. 무는 칼문은 지식이다.
나는 무가 더좋을것같다. 액션게임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보다..ㅋㅋ 이제 집에 갈시간 지원이도 한께가야지. 피터펜집사님 모두들 고맙습니다~~




ㅋㅋㅋ 옛날에 썼던 기행문.. 지금 보면 새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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