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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박찬영의 <<여주 역사기행>> |
조회수 : 2265 |
작성자 : 박찬영 |
작성일 : 2005-08-31 |
여주역사기행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다.
첫 번째 간 곳은 김영구 할아버지 댁에 갔다. 이곳에 가정용 해시계가 있다고 해서 왔는데 해시계가 돌 맹이가 가로 밑에 세로로 그 밑에 가로로 하나가 놓아져있었다. 그리고 맨 위에 가운데에 조금 파여 있는데 나뭇가지를 파인 곳에 꽃아 놓고 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간곳은 고달사지 부도에 갔다. 탑이 있는데 그 탑 안에 스님이 죽었을 때 태우면 사리가 나오는데 이 탑 안에 사리가 있다. 맨 밑에 연꽃무늬가 있는데 두 겹이어서 복연이라고 한다. 그 위에 중간에 거북이(?)가 있고 옆으로는 용 네 마리가 여의주를 두고 싸우고 있다. 그 위는 복연이 있고 그 위는 사천왕이 있고 옆에 자물쇠도 있고, 마지막 위에는 지붕이 시워져 있다. 조금 더 가서 원종대사 혜진탑에 갔다. 부도 탑이랑 별로 틀린 게 없었다. 내려와서 원종대사 혜진탑비에 갔다. 이비는 원종대사 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었던 이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8조각으로 나누어져 박물관에 전시되고 이곳에는 비신 없이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세 번째로 간 곳은 보제존자 석종에 갔다.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사리를 담은 석종이다. 다른 것과 달리 특수하게 전혀 다른 모양으로 되있다. 앞에 석등이 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왜냐하면 용과 비천이 있어서였다.
네 번째로 간 곳은 영릉이었다. 조선 제17대 효종임금과 인선왕후가 모셔진 쌍릉이다. 병자호란 때 당한 것을 씻기 위해 북벌 정책을 추진 했지만 41세 나이로 승하하셔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갔다. 그리고 세종대왕도 좀 더 가서 모셔져있었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글 창제, 학문창달, 과학의 진흥, 외치와 국방, 음악의 정리 등 한일이 많았다고 한다. 박물관에 여러 가지 문화재가 많이 전시되어있고 바깥에는 여러 가지 해시계와 측우기가 있었다.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번째로 간 곳은 명성황후 생가 였다. 명성황후는 1815년 경기도 여주에서 영의장 민치록의 딸로 출생하였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선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에 간택․책봉된 후 치열한 삶을 살다가 1895년 10월 일본의 낭인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이것이 을미년에 일어난 사변이어서 을미사변이다.
정말로 보람있고 재밌는 역사기행이었다.
목사님 늦게 써서 ㅈㅅ ㅡ0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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