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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남한산성기행을 다녀와서 조회수 : 2895
  작성자 : 이석현 작성일 : 2006-08-22
오늘은 22일 화요일 정말 화창한 날씨이다.
이번까지 역사기행은 9번째이다.
그래서 역사기행의 고단함도 매우 잘알고 있다.
몇번 갔었던 남한산성! 남한산성 역사기행이라 처음에는 그리 크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전부 친구는 없고 전부 애들뿐이였기 때문이다.준비물을 보려고 홈페이지에 들어왔는데 태우가 신청을 했다.
교회에서 맨처음 친구가 된것이 태우이다. 3학년때 부터 친해진 태우 일요일밖에 보진 않지만 친하다. 그리고 승민이도 가고 아는 애들이 대부분이였다. 아침에 교회에 갔는데 이게 누구인가 태우가 와있었다. 55분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서 지각이라고 생각했는데 2등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8시 5분 인데 도 아직 나하고 태우 그리고 석주 밖에 와있지 않았다. "신기록 아니야? "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태우랑 게임얘기를 하다보니 하나둘 오기 시작하였다. 8시 15분이 되서야 밖에 나갔다. 그런데 그때도 5명! 신기록이 6명 작년에 갔던 여주기행인데 기록이 깨지는 것 아닌가 했다. 그런데 밖에 나갔는데 애들이 왔다. 그래서 10명이 왔다. 그런데 출발을 안했다.
그리고 15분이나 기다렸는데 준성이가 그제서야 왔다. 그래서 드디어 30분에 출발 남한산성기행이 시작된것이다. 차에서도 나랑 태우는 계속 얘길 했다. 주제는 프리썹이야기 였다. 금새 35분이 지나갔다. 그리고 톨게이트에서 나와서 남한산성 도착! 한 10분정도를 안으로 들어가니 보이는 것은 동문! 겨울에 다찬이랑 왔을때 지나치기만 했던 동문^^ 남한산성은 다들 알듯이 산성이다. 성이란 쌓아지는 곳에 따라 이름이 바뀐다. 이곳은 돌로 지은 석성이다. 남한산에 이ㅆ는 산성이라 하여 남한산성이라 부르게 된것이다. 남한산성이 태어났을때는 신라시대! 그때 남한산성이 쌓이게 되었다. 쌓여졌을 당시에는 남한산성이라 부르지않고 주장성이라고 하였다. 남한산성은 여러번 고쳐 쌓아졌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조선의 2대 전쟁중 하나인 병자호란이 일어난 곳이다. 그리고 동문 앞에 있는 길은 원래 길이 없고 험학하다 그리고 이곳에는 계단이라 물품 운반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우리 나라만이 아는 암문을 여러군데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산성 역사관으로 갔다. 이곳에는 남한산성의 역사가 자세히 나타나 있었다. 남한산성이 주장성이라 불릴때는 남한산성이 토성이였는데 조선때 석성으로 개척했다. 그리고 병자호란이 일어났을때의 그린 큰 기록화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절사로 갔다. 현절사는 병자호란때 항복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었던 삼학사 홍익한,윤집,오달제의 사당이다.청나라에 이 삼학사는 병자호란에 패배를 하고 청나라에 잡혀갔는데 나중에 처형당해 죽게 된다.
그런데 이 삼학사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나도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도 끝까지 절개를 지켜야 겠다.
그리고 우리는 연무관으로 갔다.연무관은 군인들이 훈련받던 곳이다.꽤 넓은 마당이 있었다. 이곳에서 무과시험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그리고 우리는 남문으로 갔다. 이곳 남문은 지화문으로도 불렸다.이곳은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가려다가 청나라에 길이 막혀 가족을 모두 강화도로 보냈는데 길이 막혔으니 어쩔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왔을때 이곳 남문 즉 지화문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렇게 다른 나라를 피해 이곳저곳 피난을 다닌는 것이 잘못된것 같다. 백성은 그냥 나두고 자기만 도망치는 것이 말이 되는가?나같으면 먼저 왕자와 백성을 피난 시킬것 같다. 그런데 이소식을 어떻게 전하지? 안좋은 점도 있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로 Go~^^
메뉴는 비빔밥! 역시 역사기행에는 비빔밥이지^ ^ 역사기행이 풍부한 나와 태우는 잘안다. 비빔밥같은 칼로리가 높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이런 영양만점 비빔밥을 먹으면 속이 든든 하다는 것을....
비빔밥과 같이 나온것은 된장국~^^ 비빔밥에 김치에 된장국! 최고의 조화 정말 맛있게 나랑 태우는 밥 한톨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식당에서 한 10분정도를 쉬다가 산에 오를 준비 남한산을 오르면서 문화재를 보는 것이다. 오르는데 어제 12시가 넘어서 자는 바람에 몸이 뻐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리가 아팠다. 그래도 탐고 침괘정으로 갔다. 침괘정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이유는 유뮬 발굴 조사 中이기 때문이다. 침괘정을 밖에서만 봐야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세히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이 침괘정은 무기를 만들고 보관하던 곳이다. 즉 <무기제작소>와<창고>가 결합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원래의 이름은 침과정이였는데 이 뜻이 "창을 베고 잠을 잔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시간이 흘러서 침괘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서 영월정으로 갔다.이 영월정은 달맞이를 하던 곳이다. 행궁과 가까워 인조가 와서 달맞일ㄹ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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