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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다함이의 기행문 |
조회수 : 1650 |
작성자 : 윤다함 |
작성일 : 2004-01-17 |
다함이의 기행문
첫날에 새벽 3시에 기도 드림으로서 출발했다. 목사님께서 내가 석현이, 동규, 다찬이와 같은 차를 타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조금 실망했다. 그리고 밖에서 가방을 교회 차에 옮기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지럽기도 하고... 그러나 어린이 역사기행에 가서 할 일들을 생각하니 아픈 생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뒤에서 여자 애들이 수다 떠는 소리를 들으며 겨우겨우 자기 시작했다. 6시쯤에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김밥) 계속 청도로 향했다. 7시쯤 청도에 도착했다. 어린이 역사기행의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밀양 박씨의 세거지인 "운강고택"이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옛집에 대문채, 사랑채, 안채 등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우리는 각 나라의 문화가 기와에 의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가까운 정자에 갔다. 그 정자에 이름은 "만화정"이었다. 선비나 양반들이 이곳 만화정, 아름다운 정자에 와서 앞에 내려다보이는 금천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아름다운 시를 짓고 읊었다고 한다.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아름답게, 열심히 해내야 한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산길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해서 조금 나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바로 "청도 석빙고"였다. 청도에는 두 개의 유명한 것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바로 감이다. 이천에서 유명한 쌀을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는 것과 같이 청도에서는 씨 없는 감(씨 없는 감이 99/100)을 임금님 수라상에 올린다고 한다. 둘째는 소싸움이다. 청도에서는 유별나게 소싸움을 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유명한 것이 있는데 그 것이 바로 이 "청도 석빙고"이다. 우리 나라에는 총 6개의 석빙고가 있는데 이 "청도 석빙고"는 대한 민국에서 제일 오래 된 석빙고이다. 석빙고는 얼음을 녹지 않게 저장해두는 얼음 냉장고이다. "청도 석빙고"는 아치형, 즉 홍예법을 아주 잘 이용한 자랑스런 한국의 거대한 얼음 냉장고였다.
달성으로 향했다. 또 산을 올라가고 내려갔지만 이번에는 조금 지루했다. 중·고등학교인 "도동서원(서원이 중·고등학교라는 뜻)"에 갔다. 여기서 우리는 서원의 건물들이 어디에 배치 되어있는지 배웠다. 먼저 대문을 지나면 누각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환주문"이 있다. 이 문은 중·고등학생들에 비해서 낮았다. 왜냐하면 그 학생들은 모두 다 갓을 쓰고 서원으로 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학생들이 모두 다 나라, 부모님, 그리고 이 서원의 사당에 모신 분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을 모르고 별 사람들을 다 섬겼는데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환주문을 지나니 앞에 강당이 있고 그 강당에 동쪽에 동재, 서쪽에 서재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기숙사가 있다. 또 강당 뒤에 마지막으로 사당이 있었다. 도동서원은 김굉필이라는 사람을 배향한 서원이다. 김굉필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말썽을 부리며 장난치다가 결혼하고 난 후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 반란 같은 것에 가담했는데 탄로 나서 그의 제자인 김굉필도 의심을 받아 사약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참 안 됐다. 그렇지만 그게 나였어도 그냥 스승을 따라 죽겠다. 그 스승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죽어야 하는 그런 용기가 나에게는 정말로 절실히 필요하다.(아멘! ^_^;;)
남평 문씨 세거지에도 갔다.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 당나라에 가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이 있다. 우리가 간 집에 이름은 수공정사였다. 앞에 있는 정원도 아주 고급 정원이었다. 소나무도 있고 거북 동상도 있고... 그 곳은 아예 남평 문씨들이 눌러않아 살고 있었다. 아예 가로등도 만들고 마을을 이루었다. 정말 멋있는 마을이었다.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드디어 점심 먹는 시간이 왔다. 석현이와 갈비탕을 나누어 먹었다. 그 식당에는 아이스크림도 있었다. 나는 목사님께서 기도하실 때 우리가 밥을 먹은 식당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정말로 좋았다. 정말로 그 가게가 하나님을 믿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
삼가헌에 갔다. 삼가헌은 사육신 중에 한 명인 박팽년에 12대손 박성수가 분가한 후 세운 집이다. 박성수는 가문의 3가지 가훈을 이 집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 것이 바로 "삼가헌"이다:
1. 천하와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다 -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2. 벼슬을 거절할 수 있다 -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3. 칼 위를 걸어다닐 수 있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박성수는 아주 청빈하게 살았다. 그리고 그 집의 안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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