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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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준영이의 기행문입니다 조회수 : 1679
  작성자 : 박준영 작성일 : 2005-01-20
1월 10일 월요일 역사기행을 떠났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에는 낯 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낯설지가 않았다, 첫번째로 간 곳은 행주산성이었다. 목사님께서 가실 때마다 이야기 아니면 설명을 해주셨다, 행주산성에 가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게 올라갔는데 너무 배가 고팠다,
권율 장군과 관련된 곳인데, 일본군이 배를 몇 척을 타고 와서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바다에서 싸우고 권율 장군은 이 행주산성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적과 싸울때 성안의 여자들은 치마로 돌멩이를 나르고 주머니를 만들어서 던지기도 했단다. 그래서 권율 장군이 크게 승리를 했다고 했다
그 다음에 간곳은 덕포진이다. 덕포진은 프랑스군과 우리나라가 전쟁을 한 곳이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손돌의 묘인데 손돌의 묘는 손돌에 관한 것 이다. 손돌이 강화도로 가야하는데 파도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니까
임금님이 왜 좋은 길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가냐고 그랬다 그래도 손돌은 계속해서 가서 임금님이 죽이려고 하자 손돌이 방에 들어가서 바가지를 가지고 나와서 던져서 임금님에게 말하였다.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로 잘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해도 임금님은 그 말이 거짓말인 것 같아서 손돌을 죽였다. 그리고 손돌 의 말대로 바가지를 따라서 가보았는데 손돌의 말대로 강화도에 잘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 간 곳은 덕 포진 교육 박물관이었다. 그 곳에서는 옛날에 있던 물건들이 참 많았다, 옛날 책, 연필, 컴퓨터, 과학 물건, 낫 등등 있었는데 옛날 학교에서 종도 치고 수업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서 조금 밖에 못 했다. 옛날에는 보자기로 가방을 해서 점심밥을 싸오던지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해도 재미있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초지진이다. 초지진에는 총알자국이 있는데 목사님이 못 보신 것 같았다, 대포자국도 있는데 전쟁을 하면서 맞힌 자국일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광성보다. 광성보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인데 어 제현과 어 제순 형제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신 곳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전등사이다. 전등사 근처에는 정족산성이 있는데 단군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그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전등사에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전등사에 어느 한 목수가 살았는데 그 목수가 술집 주모를 좋아했다. 그 주모에게 돈을 주었는데 그 돈을 갖고 도망가서 목수가 화가 나서 대웅전 기둥을 깎아 주모를 만들어서 주모가 대웅전 기둥이 되어 대웅전 기둥이 되라고 사방기둥 꼭대기에 깎아 놓았다고 한다. 다 끝내고 제일 좋은 모텔에서 일기를 쓰고 잤다. 다음날이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행주산성에서 5명을 만나서 한 조가 되었는데 우리는 6명이 되었는데 다른 조는 5명, 4명이였다. 그런데 우리 조에서 별명을 지었는데 나는 바람, 키가 조그만 애가 2명 있는데 1명은 노랭이 이고 다른 애는 갈갱이가 되었다. 형들은 녹장이랑 검댕이가 있었다.

다음날 자고 일어났는데 6시에 일어났는데 제일 늦게 나왔다.
밥을 빨리 먹고 마니산에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는데 쉬워서 계속 계단도 없고 길만 있을 것 같아 열심히 올라갔는데 중간 올라왔다 싶었더니 아직 올라가지도 않은 거여서 조금만 더 가면 끝 날 것 같았는데 계단이 918개고, 높이가469m여서 쓰러질 뻔했다 그런데 올라가서 보니까 다리가 떨렸다. 그런데 정상에 올라가서 야호! 그러고서 밑을 봤는데 집이나 나무들이 장난감같이 엄청나게 조그만 것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는 참성단이 있었다. 참성단에서는 동그란 곳과 네모난 곳이 있다. 동그란 곳은 하늘이고 네모난 곳은 땅이라고 하셨다. 마니산을 올라갔다 내려올 때도 다리가 너무 떨렸다.
마니산 다음으로 간 곳은 이 규보 선생님의 묘인데 이 규보 선생님은 글씨를 너무 잘 쓰셔서 유명하게 남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절원사지인데 절월사지에는 절원사가 있었는데 전란 때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고려의 궁궐터인 고려궁지인데 몽골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몽골군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1270년 몽고와 화의가 성립 되어 개경으로 천도 하여 뒤 궁궐 과 성문을 무너뜨렸다고 한 다. 그 다음에 간 곳은 강화산성이다 강화산성에서는 북한의 개성 땅이 보인다.
그 다음에 간 곳은 성공회이다. 이 건물은 1888년에 만들어졌다. 성공회 건물은 우리나라 사람과 친근함을 주기 위해 절처럼 만들어 졌단다. 절처럼 보이는 건물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강화도는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에 전쟁이 많이 일어났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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