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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목사님 역사 기행문이여...ㅋㅋ |
조회수 : 1740 |
작성자 : 서인희 |
작성일 : 2005-01-25 |
*목사님 저여 장연주입니다여...ㅋㅋ 엄마 아뒤예여..
나는 강화도로 역사 기행을 갔다.
긴장이 되고 또 떨렸다.
가는 도중에는 멀미를 했다..
하진만 오바이터(?)는 하지 않았다.
먼저 처음으로 행주산성으로 떠났다.
행주 산성에 대한 뜻깊은 사연이 있다.
외적과 전쟁이 일어났을때는 양식 옷 신발 화살 물품드잉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은 갑작 스럽게 처들어 왔다..
그리고 일본군은 3만명이었다. 그래서 조금 불리하긴 하였다.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 나라는 여자들이 치마를 짧게 만들어서 돌을
옮겼다.
높은 곳에서 우리 나라 군인들은 여자들이 돌을 주면 던져서 우리 나라가 완벽한 승리가 되었다.
이런 사연을 들어보면 나도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서 우리 나라에 큰 인물이 되고 싶다.ㅋㅋ
성에 대한 점은 3가지가 있다.
산에 있는 성은 산성 작은 마을에 있는 성은 읍성 큰 도시에 있는 성은 도성이다.
또다른 사영은 몽골이라는 외적이 침입했다.
징기스칸은 원나라를 세운 훌륭한 사람이다.
개성은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 지역 사람들은 물은 무서워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뱃사공 손돌이라는 사람은 아주 지혜로웠다.
하지만 그 반대로 아주 나쁜 몽골은 어리 석었다.
몽골과 뱃사공은 같은 배에 타서 외적으로 부터 쫓기고 있었다.
하지만 물살이 세서 뱃사공은 급하지만 멈춰 버렸다.
그러나 어리석은 몽골은 "뱃사공이 외적으로 부터 뇌물을 받고 일부로 멈췄는지 알고 의심을 했다
그래서 뱃사공을 죽였다.
하지만 뱃사공은 죽기 전에 마지막까지 바가지를 던져서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죽어버렸다.
하지만 무슨 낌새를 느꼈는지.. 바가지를 따라갔다.
역시 뱃사공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이곳의 바람을 손돌 바람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대포는 성름이 나빠서 전쟁을 잘 못했다.
병자 호란이 일어났을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또 염하를 통해서 프랑스와 미국이 처들어 왔다.
또 4년 후에는 일본이 처들어 왔다.
한일 전쟁에서는 우리 나라는 35명이 죽고 일본은 2명이 조금 다쳤다.
실력차가 있고.. 또 포기하는 마음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나라는 힘이 약하다 그러므로 힘을 길러야 한다.
먼저 육체의 힘을 기른다 또 지식의 힘 역적인의 힘을 길러야 한다.
강화도는 슬픔 섬이다..
아직 옛날의 모습이지만 많은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
엄마 아빠가 옛날에 다니던 학교로 견학을 가 보았다.
그곳은 장님이신 할머니가 피아노를 치시면 노래를 부르셨다.
즐거웠다.
그곳에서 먹는 컵라면이랑 밥을 말아 먹었을때 정말 맛있었다.
둘째날 마니산에 올라 갔을때는 정말 힘들었다.
내가 8등인간 했다.
정말 낭만적인 운동으로 기억에 남겨져 있다.
개단이 918개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 극복을 이겨낸 내가 자랑 스럽다.
우리는 항상 밥을 먹을때 부산 어쩌구 집에 갔다.
처음 역사 기행할때부터 그런 것 같다.
세째날 우리는 파주로 향했다.
여러가지 유적지를 보았다,..
마지막 날이라서 아쉬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일산에 들려 피자헛에 갔다.
피자가 쭉 늘어지면서 정말 맛있었다..
역사기행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못한면도 있지만..
그래도 즐거운 2박 3일동안 정말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