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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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준형이의 기행문 조회수 : 1605
  작성자 : 박준형 작성일 : 2005-01-30
1월 17일 아침7시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역사기행을 떠났다.
처음엔 2박 3일동안 딴곳에서 자고 먹고 생활해야 해서 조금 슬펐(!)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도 궁금하여 마음이 설렜다.
차를 탄 다음 친구들과 얘기를 조금 한 뒤에 졸았다.막히는 부분도 있어서 강화도 까지는 내 예상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처음 시작점은 행주대첩의 현장인 행주산성에 도착했다.엄청난 무릿수에도 이겨낸 군사들과 권율 장군이 자랑스러웠다.그런데 그때 왜장이름이 참 "웃기다"."우끼다"!
다음 목적지인 덕포진은 강으로 접어도는 곳에 반대쪽 포대와 마주보는 쪽에 있었다.양쪽에서 공격하게 위해서였다고 한다.하지만 대포 수가 좀 적은 느낌이 들었다.
덕포대끝에는 손돌묘가 있었는데,손돌은 고종이 피난갈때 바가지를 띄워 왕을 살린 뱃사공이다.나는 자기는 죽어도 끝까지 충성심을 발휘한 손돌이 대단하게 생각됐다.
덕진진도 덕포대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즉 다른 포대와 좁은 바다에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미군과 전투가 있었던 초지진에 갔다.초지진은 아주 많은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병인양요에서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까지.운양호 사건때는 일본전함이 식수를 달라고 행패를 부리고 시비를 걸다가 일어난 사건이다.초지진에서 우리 군사들은 대패를 당했다.소나무엔 포탄자국이 나있었다.나는 무슨 대포자국이라도 나있는줄 알았는데 조그만,구슬같은 총알 구멍이었다.하지만 저 총알에 맞으면 어떨까 상상해보니 소름이 확 돋았다.
광성보에서는 이천출신인 어재연 장군님이 300명 또는 600명의 관군들과 함께 1200명의 미군들과 싸우다가 모두 전사한 곳이다.미군은 3명밖에 안 죽었다고 목사님께서 말씀 하셨다.어재연 장군님은 매복작전을 계획하셨으나,매복군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쳐서 군사 수가 더욱 줄었다고 한다.도망친 그 군사들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리 힘이 세고 수가 많아도 전략과 전술이 신통치 않으면 밀릴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매복에 성공했더라면 아마 엄청난 피해를 줄수 있었을 텐데.......정말 안타깝다.
다음은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 용두돈대에 갔다.정말 용의 머리처럼 생긴 이 돈대는 어재연 장군의 충성심을 기리는 비가 세워져 있었다.성벽이 매우 멋지고 튼튼해 보였다.옆의 손돌목 돈대는 보통돈대와 구조가 비슷하였다(둥그렇다).
박물관에 가서 전쟁사등을 더 자세하게 배웠다.그곳에서 본 자료중 가장 기억에 남는것들은 전투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한 것, 전투후의 사진 등이었다.
다음은 이규보 선생님 묘소에 들렀다.이규보 선생님은 글을 아주 잘 쓰셨다고 한다.그동안 친해진 세 친구들과 반을 배정받아 기분이 아주 좋았다.친구들과 새벽까지 즐겁게 놀다가 잠이 들었다.



답사 2일째는 마니산을 먼저 올랐다.계단이 918개인 마니산은 오르기가 엄청 힘들다.처음에는 918개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상상도 안돼서 별로 안 되게 느껴졌다.하지만 진실은 참혹했다.반도 안가 모인 체력을 다 소진시켜 버렸다.나머지 코스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형식으로 힘을 쥐어 짜며 발을 움직였다.4분의 3쯤 왔을때 산과 마을이 보였는데,산의 윗부분은 안개에 싸여 마치 한폭그림같았고 마을은 작아보여서 먹물그림에 나오는 소박한 마을같이 느껴졌다.나머지 길은 아주 힘들었다.거의 기다시피 해서 겨우 정상에 올랐다.정상에 오른 기분은 정말 힘들고 쌓인 피로가 싸악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주위가 확 트이고 강화도, 참성단이 내려다 보이는게 진짜 시원하였다. 그런데 내려가는 것도 일이었다.
다음은 분오리 돈대이다.주변에 지뢰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겁을 좀 먹었다.발 끝만 쳐다보며 돈대로 갔다.이 돈대는 전투가 없었다고 한다.크기는 조금 작게 느껴졌다.이곳은 군사10~20명 정도가 순찰을 봤다고 한다.
다음은 고인돌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남방,북방,개석식 고인돌이 다 모여있었다.옹기종기 있어서 정다운 느낌이 들었다.덮개돌이 엄청 큰 것도 있었다.목사님께서는 아기 고인돌이라고 하셨다.
강화 5층 석탑을 지난뒤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있는 엄청 큰 고인돌을 봤다.정말 커서 장엄한 느낌이 들었다.아마도 이 고인돌의 주인은 몇천명의 부하를 거느린 대족장이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엣에는 군사훈련소였다가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곳인 연무당터에 갔다.강화도 조약은 초지진에서 일본배 운양호와 우리 군대가 전투를 벌인 운양호 사건 에서 진 후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부끄러운 장소인 것이다.목사님께서는 우리들은 역사에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아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강화산성 서문은 강화도 피난때에 왕이 주거하던 곳을 보호해주는 성의 서문이다.원래는 토성인데 석성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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